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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불상’에 절하는 일본 총독 사진, 그 의미는?

중앙일보

입력

정인성 영남대 교수는 경주에서 서울 남산 총독부 관저 근처로 옮겨진 청와대 불상 사진을 3일 공개했다. 이 불상은 또다시 현재의 청와대 위치로 이운됐다. [정인성 교수 제공=연합뉴스]

정인성 영남대 교수는 경주에서 서울 남산 총독부 관저 근처로 옮겨진 청와대 불상 사진을 3일 공개했다. 이 불상은 또다시 현재의 청와대 위치로 이운됐다. [정인성 교수 제공=연합뉴스]

청와대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이 일제강점기인 1913년 경북 경주에서 서울 남산 조선총독 관저 근처에 안치된 직후 열린 개안식 사진들이 처음 공개됐다.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4일 한겨레를 통해 최근 일본 도쿄대 박물관 소장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불상의 옛 개안식 사진 2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 불상을 담은 사진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특히 일제강점기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가 불상 앞에서 배례하는 장면이 담겨 눈길을 끈다.

사진 속 데라우치는 불상 앞에 예단 탁자를 놓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배례를 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그를 지켜보는 일본 승려 2명의 뒷모습이 보인다. 실제 데라우치의 1913년 2월16일자 일기에서는 관저 앞 절벽 아래 안치된 불상 앞에서 승려 마루야마 화상의 주재로 야마가타 정무총감, 아카시 장군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안식을 열었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른 사진에서는 대좌 위에 앉은 불좌상의 모습과 그 앞에 개안식 예물로 올린 접시의 과일들과 촛대를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은 1910년대 조선 고적조사를 벌였던 건축사가 세키노 타다스의 자료들 속에서 찾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 교수는 “청와대 불상 반출은 1934년 3월 <매일신보>에 총독부박물관이 불상 소재를 찾았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세간에 공개됐다”며 “사진들은 데라우치가 개안식을 통해 불법반출된 불상을 사유화하고, 조선 유적지에서 암약하던 일본인들의 문화재 밀반출 행위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에 따르면 청와대 불상은 1913년 데라우치의 환심을 사려는 일본인 유지가 경주에서 반출,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9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직원의 관련 조사서에도 ‘데라우치 총독이 경주를 순시할 때 석불을 눈여겨보기에 당시 소장자가 총독의 마음에 몹시 들었음을 눈치채고 즉시 서울 총독관저로 운반하였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 불상은 1927년 조선총독 관저를 신축하면서 현재 청와대 뒷산으로 이전됐고, 100년 가까이 청와대 경내 보안구역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 조사위원회는 지난 9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가결한 청와대 불상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승격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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