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형 경제 위기 가능성 작지만 트럼프가 미국 경제의 복병”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60호 04면

금융위기 10년 … 스타 분석가 2인의 세계 경기 진단

월가는 트럼프의 감세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뉴욕증권거래소의 장내 트레이더가 트럼프 모자를 쓰고 동료와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 EPA=연합뉴스]

월가는 트럼프의 감세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뉴욕증권거래소의 장내 트레이더가 트럼프 모자를 쓰고 동료와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 EPA=연합뉴스]

꼭 10년 전 일이다. 2007년 12월 미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위축과 함께 불균형이 표면화했다. 이듬해 9월엔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경제를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빠뜨렸다. 각국의 몸부림이 시작됐다. 주요 나라들이 양적완화(QE), 마이너스 금리 등 낯선 정책 채택도 망설이지 않았다. 파상적이고 공격적인 돈 찍어내기(머니 프린팅)의 힘일까. 일단 위기의 진앙인 미국 경제는 2009년 7월 이후 100개월째 확장 중이다. 호황이란 얘기가 아니다. 미 경제가 침체의 저점(2009년 6월)까지 수축한 뒤 확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데니스 가트먼 #미 경제는 100개월째 확장 국면 #120개월 이상 이어지기는 힘들어 #경기 사이클상 침체 대비할 필요 #마틴 울프 #세계 경제는 3단계 위기 겪은 뒤 #2016년 이후에야 동반 회복 중 #트럼프 방해만 없으면 괜찮을 것

골이 깊은 만큼 오르막이 긴 것일까. 오스트리아 미제스(Mises) 경제연구소는 “미 경제가 100개월 이상 확장한 사례는 이번까지 포함해 세 차례뿐”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황금기(골든 에이지)인 1960년대와 90년대다.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10월부터 달러 회수에 나섰다. 지난주엔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올렸다.

미 경기가 꾸준히 확장하자 월가 한쪽에선 “두 번째 대안정(Great Moderation)이 시작되고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대안정은 낮은 물가상승률 속에 꾸준한 성장이 장기간 이어지는 현상이다. 첫 번째는 80년대 중반 이후 2000년까지 15년 정도 지속됐다. 경기 전망은 늘 낙관과 비관이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하는 영역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의 ‘스타 분석가’인 데니스 가트먼 가트먼레터 발행인 겸 투자가는 “대안정이라니 턱도 없는 소리”라고 발끈했다. 대신 “경기 침체가 조만간 일어난다”고 예측했다. 그는 나름의 경기 진단을 바탕으로 원자재를 사고팔아 부를 축적했다. 지금은 경제와 투자 분석 레터를 펴내고 있다. 직접 전화를 걸어 그의 진단을 들어봤다.

2차 대안정의 시작이 아니라고 했는데.
“1차 대안정 자체가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예외적인 사건이 짧은 세월(위기와 침체)이 흐른 뒤 다시 펼쳐진다는 게 일단 상상하기 힘들다. 첫 번째 대안정은 연준의 적절한 인플레이션과 성장 관리, 정보기술(IT) 확산으로 기업의 재고 관리 혁신, 다양한 금융수단 등장 등이 맞물린 덕이었다. 지금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기 확장은 무엇인가.
“오랜 침체 뒤에 오는 완만한 경기 회복이다. 나는 경기의 10년 주기설을 주장한 사회주의자인 카를 마르크스와 엮이는 게 싫지만 경제가 위기 이후 10년 정도 되면 불균형이 싹트곤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미 경제가 2008년과 같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말인가.
“침체를 예측하기는 했지만 경제 위기를 경고한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번 침체는 일상적인 경기 변동의 일부다. 미국 기업과 가계가 지나친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지도 않다. 하지만 경기 확장이 상당 기간 이뤄졌다. 미국 2년과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그래프 참조). 침체 전의 모습이다.”
언제쯤 미 경기가 가라앉기 시작할까.
“경기 침체와 확장을 공식적으로 진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경기 확장은 120개월이었다. 90년대 일이다. 이번 확장이 그 정도 길게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다. 내가 보기엔 내년 상반기 이후 미국 경제는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아주 자연스러운 경기 조정이다.”

가트먼, 금값 추락 등 정확히 예측

데니스 가트먼

데니스 가트먼

가트먼의 예상은 곧잘 들어맞았다. 원자재 수퍼사이클 시기에 금값이 치솟았다. 가트먼은 금값이 온스(31.1g)당 1600~1800달러 사이를 오르내린 2012년 금을 처분했다. 그때 그는 “이제 원자재, 특히 금의 호황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런 그의 눈에 세계 경제에 어떤 복병이 있는지 궁금했다.

서방 전문가들이 중국 부채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곤 했다.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중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예상보다 경제를 잘 관리하더라. 상당히 놀라운 관리 능력이다. 그 정도라면 큰 파열음은 나지 않을 수 있다.”
터키 등 취약한 나라에서 시작된 위기가 해당 지역과 글로벌 시장으로 번지지 않을까.
“글로벌 시장 금리가 절대적으로 낮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한때 취약한 나라로 꼽혔던 곳이 초저금리 시대에 조달한 돈으로 고금리 부채를 갚았다. 외환보유액도 어느 정도 비축했다. 금리가 오른다고 이들 나라의 이자 부담이 급증할 것 같지 않다.”
금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롬 파월의 연준 의장 지명을 어떻게 보는가.
“미스터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연준 차기 의장만은 아주 훌륭한 선택을 했다. 적절한 후보를 내놓았다.”
파월이 상원 인준을 받고 내년 2월에 취임하면 기준금리를 몇 번이나 올릴까.
“지금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에 3~4회 올린다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가 하반기에 꺾이면 연준은 상당 기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연준이 긴축하도록 내버려 둘까?(웃음).”

울프 “미국 빼곤 이제야 상승 시작”

마틴 울프

마틴 울프

가트먼은 CNBC 등 미국 경제매체들이 선호하는 분석가다. 그의 간명한 진단과 전망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는 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둘러 또 다른 ‘스타 전문가’인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를 인터뷰한 이유다. 좀 더 체계적인 리스크 분석과 진단, 전망을 듣기 위해서였다. 최무룡 중앙SUNDAY 런던 통신원이 런던 FT 본사에서 울프를 인터뷰한 뒤 녹음파일을 보내왔다.

지금 세계 경제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긴 회복기다. 8년 넘게 확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세계 경제가 ‘회복의 동조화(synchronized recovery)’를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일본·신흥국 등이 나란히 회복하고 있다.”
긴 회복인데 경기 사이클이 바뀌지 않을까.
“미국 경제가 긴 기간 동안 상승(upsw ing)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길다고만 말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는 2008년 이후 세 차례 위기를 겪었다. 미국발 금융위기(2008~2009년)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의 재정위기(2009~2012년), 상품 거품 붕괴에 따른 신흥국 경기 침체(2014~2015년) 순이었다. 글로벌 경제가 2016년 이후부터 나란히 회복하고 있다. 회복기간이 길지 않다.”
어떤 전문가는 2차 대안정 시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1차 대안정 시기에 보였던 모습 가운데 몇 가지가 요즘 나타나고 있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완만한 성장률 등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물가 수준과 완만한 성장이 아주 장기적으로 이어져야 대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난 대안정 자체가 위험스럽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미국 경제학자인 하이먼 민스키(1919~ 96) 전 워싱턴대 교수와 시각을 같이한다. 그는 경기 확장이 오래 이어지면 금융이 실물보다 웃자라 거품으로 바뀌고 결국 금융위기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1차 대안정이 결국 2008년 위기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가트먼 등 몇몇 전문가는 미국 경제가 경기 사이클상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현 단계에서 미 경제나 갓 회복하기 시작한 유럽이나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는 단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08년 이후 급증한 공공부채는 불안요인

울프는 2008년 금융위기 전후 상당한 비관론자였다. 당시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 등에서 “위기가 진정되더라도 세계 경제가 가볍게 되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 세계 경제는 가파르게 회복하지 못했다. 이런 그가 현재 글로벌 경제에 대해 사뭇 낙관적이다. 좀 뜻밖이었다.

2001년 닷컴 거품이 붕괴한 이후 7년 만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기간만 본다면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 경제가 강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또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여전히 지난 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위기 이후 금융 규제가 한결 강화됐다.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불안요인은 꼬집는다면.
“2008년 이후 주요국 국가 부채가 급증했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의 빚이 줄기는 했지만 눈에 띄게 많이 줄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양적완화와 저금리정책으로 더 많이 빌려 소비하는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방아쇠(trigger)가 없으면 불안 요인이 폭발해 위기로 번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짚이는 방아쇠가 있는가.
“주식 등 주요 자산 가격이 당장 추락할 것 같지는 않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빚내 주식을 사는 경우가 줄었다. 다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인플레이션이 갑자기 심해지면서 시장 금리가 급등해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울프는 미국 등 기준금리는 낮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시장 금리가 급등하는 사태를 걱정했다. 시장 금리 상승(국채와 회사채 값 하락)→이자 부담 급증→대출과 투자 감소→침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그럴만한 여건은 조성돼 있다.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 현찰은 넘쳐나고 있다. 연준은 긴축을 시작했지만 유럽과 일본은 아직 아니다. 다만 울프는 양적완화 시절에 풀린 돈이 어느 시점에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진 않았다.

무엇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을까.
“경제정책 실패다. 내 눈에 트럼프와 그의 경제팀이 실수할 수 있을 듯하다. 트럼프는 낮은 지지율 때문에 골치다. 재선을 위해 미 경제가 호황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경기를 지나치게 부양하려 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트럼프가 아주 파격적인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많은 달러가 풀려 있는 데다 감세까지 더해지면 자산시장이 과열로 치달을 수 있다. 여기에다 최근 트럼프는 금융 규제 등의 완화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연준의 긴축이 과열을 억제하지 않을까.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이 연준의 양적축소(QT)와 기준금리 인상을 방해할 수 있다. 현재 재닛 옐런 등 연준 멤버들이 합의한 긴축 속도는 경기 위축이나 과열을 일으킬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가 개입해 현재 컨센서스를 무너뜨리면 경기 과열과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 악화로 번질 수 있다.”

파월의 온탕·냉탕식 통화정책 우려도

한마디로 트럼프가 미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란 얘기다. 울프의 이런 우려는 파월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되면서 더욱 커진 듯했다. 그는 “파월의 금융통화정책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그는 최근 연준 의장들과는 달리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그는 법률가 출신으로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논문 등으로 자신의 경제 철학이나 이론을 밝히지 않아 시장이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통화정책이 어떨 것으로 보는가.
“솔직히 말해 나는 잘 모르겠다. 파월이 연준 이사에 지명된 2012년 이후 그가 통화정책 결정과정에서 보여 준 태도에 비춰 볼 때 현재 완만한 긴축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듯하다. 그러나 백악관이 긴축에 반대하고 나서면 앞서 말한 예상 밖 인플레이션 악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당장 내년에 그런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다.
“현재 글로벌 경제가 안고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이야기한 것뿐이다. 내년에 당장 물가가 급등할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가 정치적 이유로 긴축을 방해한다면 2~3년 뒤에나 물가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 정반대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더 긴축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파월이 어떤 사람들하고 통화정책을 할지 확실하지 않다. 현재 연준 이사 가운데 사퇴의 뜻을 밝힌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자리에 강경한 긴축론자들이 지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 경제가 오버킬(overkill) 될 수 있다. 리스크 진단 관점에서 보면 미 경제는 양극단의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FT는 서방 경제매체 가운데 꾸준히 중국 부채 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곳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대규모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중국인 경제학자는 “FT가 늑대 소년이 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울프가 소속 매체와 시각을 같이하는지 궁금했다.

중국이 부채 위기에 빠지면 이웃인 한국 등은 큰일이다.
“중국의 빚이 거대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빚을 잘 관리해 왔다. 당장 부채가 대규모 위기를 유발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빚은 중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다.”
무슨 말인가.
“중국은 빚을 내 투자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빚이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다. 부채 증가가 멈추면 중국 경제가 진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관련기사 
● 예정된 수순, 금융 경련 없었다
● 트럼프 감세 법안 미국 상원 통과
● 오피스텔·상가엔 타격, 끄떡없는 IT 주식
● 부동자금 1000조원 움직임이 변수 … 비과세·선진국에 분산 투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