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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업에 대주주 목소리 낸다 … 일각선 경영간섭 ‘연금 사회주의’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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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능후. [연합뉴스]

박능후. [연합뉴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 1년 전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잊히다시피 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내년 하반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박능후 장관 “투자회사 가치 높일 것” #다른 연기금·운용사로 확산 가능성

박능후(사진) 보건복지부 장관은 1일 열린 제7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인 국민연금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투자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기금의 장기적 안정성 및 수익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와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투자 제한 및 변경을 건의할 수 있는 ‘사회책임투자 전문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과 고객 돈을 관리·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3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은 612조원을 굴리고 있다. 국내 주식에 투자된 돈만 127조원이다. 지금까지 금융투자업계에선 “국민연금이 참여해야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란 말이 공식처럼 나왔다. 큰손이 움직이면서 눈치를 살피던 나머지 연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과 연기금이 돈을 맡기는 운용사도 빠른 대응이 불가피해졌다. 지금까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곳은 자산운용사 11곳과 자문사 2곳이다.

한국보다 3년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공적자금(GPIF)의 참여가 제도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관투자가가 단순히 거수기에 그치지 않고 주주를 대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주주 권리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배당금 확대를 비롯한 주주 친화 정책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용선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참여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본격적인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한국 기업의 신뢰도 지수가 올라가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도입까진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벌써 정부가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가를 이용해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KB금융지주 임시 주총에서 9.68%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노동자 대표가 기업 경영에 참여)에 찬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표결 배경과 관계없이 노동이사제가 현 정부의 공약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이어졌다. 노동이사제는 부결됐지만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특정 기업 지배구조를 바꾸는 등의 목적으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아예 주식 운용을 민간에 맡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주식 운용은 100% 신탁이나 일임 형태로 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한 곳

◆자산운용사(11곳)=달톤인베스트먼트, 오아시스매니지먼트컴퍼니, 메리츠자산운용, 스틱인베스트먼트, 엔베스터, 유니슨캐피탈코리아, 이상파트너스, 제이케이엘파트너스, 큐캐피탈파트너스, 하이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자문사(2곳)=서스틴베스트, 제브라투자자문

[자료 :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 코드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국민과 고객이 돈을 맡기면 이를 맡은 기관투자가가 관리와 운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영국·일본 등 20여 개 국가가 도입했다. 국내에선 지난해 12월 7개 원칙이 담긴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가 공표됐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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