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보유 선언" 발언 파문

중앙일보

입력

사흘에 걸친 6자회담 동안 참가국들은 북한으로부터 나온 상반된 메시지로 혼란을 겪었다. 북한이 첫날(27일) 기조발언에서 "비핵화가 총적(총체적) 목표"라고 했다가 다음날 토론 과정에서 핵보유국 선언과 핵실험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북한 김영일 외무성 부상의 이 발언이 나온 것은 28일 오후 전체회의에서였다. 이날 회의는 첫날 기조발언 내용을 확인하는 자리로서 주로 북.미 간 수석대표 간에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金부상의 핵보유국 발언은 다소 흥분된 상태에서 나왔다고 한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정치적.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일본 아태국장이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자 金부상이 발끈했다는 전언이다.

목소리를 높여서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지시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고 한다. 핵보유국 선언 및 핵실험 용의 발언은 이 와중에서 나왔다.

金부상은 "북한은 핵무기를 운반할 수단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몹시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王부부장은 이 발언 후에도 회담 주최국 대표로서 차분한 어조로 회담을 진행했다.

북한의 이번 발언내용은 지난 4월의 3자회담(북.미.중) 때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당시는 이근 외무성 부국장이 켈리 차관보를 따로 불러내 전달한 데 반해 이번에는 공식적인 회담장에서 발언한 차이점이 있다.

金부상의 발언은 미국이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등에 응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보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의 색채가 짙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들은 지난 4월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다.

金부상의 발언은 회담을 결렬시키고 핵무기 개발로 나아겠다는 것이 아니라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미 백악관이 이 발언에도 불구하고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베이징 특별취재팀=김석환 논설위원, 유상철.유광종 베이징 특파원,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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