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는 아이들...인권위 노키즈존 차별 지적했지만 논란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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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한 레스토랑에 노키즈존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한 레스토랑에 노키즈존 개선을 권고했다.

18개월 된 딸을 둔 천윤혜(30)씨 부부는 지난 10월 제주도의 한 펜션으로부터 숙박 예약을 거절당했다. 천씨는 "펜션이 노키즈존이라 숙박이 안된다고 하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숙박시설뿐 아니라 분위기 좋다고 알려진 밥집, 카페 등은 노키즈존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A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제주도의 한 식당에서 9살 자녀와의 동반 입장을 거부당했다. A씨는 “별도의 안전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률적으로 출입을 막는 건 아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다”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노키즈존, 아동 배제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인권위에 따르면 해당 레스토랑 주인은 “아이들이 식당에서 놀다가 다쳐 부모가 치료비 부담을 요구한 적이 있고, 몇몇 손님이 기저귀를 갈기도 하는 등 곤란한 상황이 자주 있었다”고 아동 출입을 제한한 배경을 설명했다.

인권위는 아동 및 동반 보호자를 전면 배제하는 건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ㆍ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영업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식당주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손님들에게 아동 동반 보호자에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주의사항, 영업방해가 되는 구체적 행위를 제시하는 등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며 해당 레스토랑에 노키즈존 개선을 권고했다.

여론은 엇갈려,“노키즈존 이해한다”는 의견도  

노키즈존 식당 앞에 붙은 문구. [독자 제공]

노키즈존 식당 앞에 붙은 문구. [독자 제공]

인권위가 헌법 11조의 평등조항을 근거로 노키즈존을 부당한 차별로 보지만, 시민들과 부모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맘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나도 부모지만 노키즈존을 이해한다”는 의견과 “노키즈존은 이유 없는 차별이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노키즈존 카페 직원 A씨는 “안전상 이유뿐 아니라 다른 고객에 대한 피해를 생각할 때 노키즈존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역발상으로 ‘웰컴키즈존’ 식당과 카페 등도 늘어나는 추세다.

시민들의 불편은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월 경기연구원이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1%가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거나 우는 아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다. 불편을 겪은 장소는 식당, 카페가 72.2%를 차지했다.

젊은 층이 노키즈존에 우호적이었다. 지난 15일 취업포털 인크루트 등이 전국 20대 9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4%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51.1%는 노키즈존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노키즈존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로 '부모를 대상으로 한 육아 교육 실시'(36.2%)를 꼽았다. '키즈 카페나 어린이 체험 시설과 같은 놀이 공간을 확충해야 한다'(21.0%)는 의견도 있었다. '노키즈존 리스트 관리'와 같은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8.8%에 그쳤다.

'맘충' 논란, 특정계층 혐오로 번질 우려도 

하지만 인권위가 노키즈존을 차별 행위로 판단하고, 개선을 권고한 만큼 향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노키즈존으로 아동을 배제하는 것이 '맘충'(아동 자녀를 둔 엄마를 비하하는 말) 논란은 물론, 노인혐오 등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금지하는 것은 특정 계층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될 수 있는 위헌적 발상이다"면서 "업소는 무조건 아동을 금지하기보다는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표시나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에 힘쓰는 등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유아의 경우 주의를 주는 등 가정 교육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유치원부터 초·중·고에 이르기까지 공공 시민교육을 통해 예비 부모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2013년 UN아동권리위원회도 논평을 통해 상업시설의 아동 배제를 지적했다. 꾸준히 국내에서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서 "법적 제재를 하기보단,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고민과 제반시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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