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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변 가격제 시대 … 갤S7 영국 아마존서 하루 10만원 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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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달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양모(27) 씨는 예매하다 깜짝 놀랐다. 출장지 상황 때문에 특정 시간대 비행편을 타야 했지만, 남은 좌석은 700달러가량의 비즈니스석 밖에 없었다. 항공사 사이트에서 결제하는 동안 좌석이 한 석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내문이 뜨더니 갑자기 운임이 1100달러 수준으로 뛰었다. 양씨는 “한 시간 남짓 거리의 항공편인데 수요가 는다고 그렇게 많이 가격을 올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서비스·제품 고정가격 시대 종언 #시간·고객 따라 다른 가격제 적용 #호텔·주차장·놀이공원 등 확산 #고객 정보 바탕으로 가격 차별화

상품 가격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서비스나 제품의 가격이 정해져 있던 ‘고정 가격 시대’는 저물고 있다. 유럽에선 언제, 어떤 고객이 사느냐에 따라 같은 상품의 가격이 달라지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이른바 ‘가변 가격제’가 확산중이다.

이런 가격제는 항공사나 호텔 등에서 먼저 시작했다. 비수기에 가격을 낮추고 성수기에 올리는 정도였다. 지금은 아예 매일 시간대별로 요금을 다르게 책정한다. 영국 이지젯 등 대부분 항공사가 그렇다. 만석이 가까워지면 항공편 가격을 올린다.

확산되는 가변 가격제

확산되는 가변 가격제

가변 가격제는 다른 분야로 급속히 퍼지는 중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의 주차장에서도 차량이 몰리는 시간대에 요금을 올리고 한가한 때 낮추는 방식이 도입됐다. 미국 영화관 체인 리걸(Regal)은 관람객이 많이 찾는 시간대의 영화 표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지난달부터 시범 실시하고 있다. 맨체스터 시티 축구클럽 등을 고객으로 둔 가변 가격정책 전문회사 디이고넥스의 그레그 로웬 대표는 가디언에 “앞으로 5년 안에 스포츠팀이나 공연장, 놀이공원 등 관광 업계에선 가변 가격제가 일반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럽에선 주유소도 출근 시간대 등에 비싸게 파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온라인에 비해 대형 마트 같은 오프라인 업체들은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상품 가격을 바꾸려면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라벨을 모두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선 디지털 가격표시 장치가 대형 슈퍼마켓 등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테스코, 세인스버리, 모리슨스, 막스 앤 스펜서 등 대형 마트들이 앞다퉈 이 장치를 시범 매장에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가격표시 장치는 컴퓨터로 연결돼 하루에도 여러 번 상품별 가격을 바꿀 수 있다.

테스코 등의 일부 매장은 이를 활용해 오전 11시에 점심 샌드위치를 싸게 판매하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매장이 붐비지 않을 때 손님을 유인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것인데, 반대로 피크 타임에는 언제든 상품을 비싸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가격표시 장치 회사인 디스플레이데이터의 앤드루 다크 대표는 “영국에선 2년 내 이런 장치가 통용되고, 5년 후엔 종이 라벨은 점포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디지털 가격표시 장치로는 20초면 새 가격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 공간에선 가변 가격제가 훨씬 심하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몰은 하루에도 수시로 상품가를 조정한다. 영국 아마존에선 최근 삼성 갤럭시S7 폰의 가격이 하루 동안 최고 510.29파운드(약 73만9000원)에서 최저 439파운드(약 63만 6000원)를 오르내렸다. 변동 폭이 14%에 달했다. 300g짜리 코코아 분말 6팩 제품은 같은 날 33%나 가격이 달라졌다.

가변가격제는 소비 패턴까지 바꿔놓고 있다. 언제 장을 보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품을 싸게 살 수도 있고, 비싸게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매상들이 재고를 떨어내는 시점을 파악하면 같은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개인 재무전문가 사이먼 리드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온라인 쇼핑을 한다면 구매 전 상품의 일반가를 조사해보는 게 좋다”며 “특히 상품을 바로 사는 것보다 장바구니에 저장해두면 하루나 이틀 후 상당한 할인가를 제시하는 e메일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판매자들은 고객 정보를 이용해 개인별로 다른 가격을 제시하기도 한다. 주소와 생일, 혼인 여부, 이전 여행 기록 등을 열심히 수집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12년 여행 사이트 오르비츠는 애플사의 맥 컴퓨터를 쓰는 고객들이 다른 고객보다 최대 30%까지 더 큰 비용을 호텔 방 예약에 쓴다는 것을 분석해낸 뒤 해당 사용자들에게 더 비싼 방을 보여준 것으로 조사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2014년 보스턴의 한 대학 연구소는 월마트 같은 소매 업체들이 개별 고객의 웹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가격을 바꾸는 것을 발견했다. 소비자는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가격이 모두 같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제품을 검색한 적이 있거나 과거 유사 제품을 산 이력이 있는 소비자에겐 다소 비싼 가격을 제시해도 통한다고 여기는 판매자들이 가격을 올릴 수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런던 거리에서 만난 셰이 시그먼(25)은 “세금 때문이라면 몰라도 같은 물건을 너무 다양한 가격에 파는 것은 공정한 시장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티븐 선더스(55)는 “어느 시간대 매장을 찾든지 같은 가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요즘은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또 다른 온라인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과거 시장에선 상인이 고객의 말투나 옷차림을 보고 가격을 흥정했다. 고정 가격이 종말을 고한 시대에 판매자들은 고객 정보를 바탕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흥정을 벌이고 있다. 가격 비교에 능한 젊은 층은 환영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부담스러운 변화다.

김성탁 런던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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