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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추격조 50m 근접사격 … “총탄 관통, 귀순병 부상 덜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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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엔군 사령부 채드 캐럴 대령이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지난 13일 판문점 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를 향해 총을 쏘는 북한군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유엔군 사령부 채드 캐럴 대령이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지난 13일 판문점 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를 향해 총을 쏘는 북한군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지난 13일 오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사건 당시 북한군 4명이 군사분계선(MDL) 너머 남쪽으로 총격을 가했고, 그중 1명은 MDL을 한때 넘었다가 돌아간 사실이 유엔사가 공개한 폐쇄회로TV(CCTV) 영상에서 확인됐다. 당시 북한군 오모(24)씨가 귀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군 추격조 4명이 권총과 자동소총으로 40여 발을 조준사격했다.

북한군 4명 소총·권총 40여발 사격 #1명은 군사분계선 넘었다 돌아가 #귀순병, 총탄 속 질주하다 쓰러져 #북 증원군, 김일성 친필비 앞 집결 #저격용 소총·RPG까지 무장 추정 #유엔사, 정전협정 위반 구두로 항의

유엔군사령부는 22일 영상을 공개하며 “북한군이 두 건의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또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 북한에 항의했다”며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회의를 열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번 사건은 정전협정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유엔사는 이날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귀순 과정을 담은 CCTV와 열상감시장비(TOD) 영상 6분57초 분량을 공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영상에 따르면 사건의 시작은 당일 오후 3시11분쯤 북한군 군용차량이 시속 70여㎞ 속도로 JSA 북쪽 지역을 향해 달리면서다. 차량이 검문소를 그대로 지나치자 북한군 1명이 뛰어나온다. 이 차량은 ‘72시간 다리’를 건너 김일성 친필 기념비를 지났다. 72시간 다리는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북한군이 놓은 다리다. 72시간 만에 건설했다고 해서 72시간 다리로 불린다. 김일성 친필 기념비는 북측 판문점 관광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차량은 북측 통일각 앞에서 급하게 우회전한 뒤 군사분계선으로 향했다. 3시14분쯤 자동소총을 든 북한군 2명이 차량 쪽으로 뛰어가자 판문각 계단에 있던 북한군 2명도 합류한다. 북한군이 귀순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정황이다. 그러나 차량은 북한군 초소와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사이의 장애물에 걸려 더 나아가지 못한다. 유엔사 관계자는 “풀밭과 포장 지역을 가르는 콘크리트 턱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바퀴가 몇 차례 헛돌자 운전자는 차량을 나와 MDL 방향으로 뛰어간다. 바로 이어 차량 근처에 도착한 북한군 추격조 4명이 사격을 시작한다. 자칫하면 오씨가 북한군 추격조에 붙잡힐 뻔한 순간이었다.

추격조 2명은 권총으로, 나머지 2명은 자동소총을 쏜다. 자동소총을 가진 북한군 1명은 엎드려쏴 자세로 사격한다. 오씨는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한동안 질주한다. 유엔사는 추격조가 MDL을 분명히 넘은 오씨에 대해 사격을 멈추지 않은 사실을 적시했다.

귀순병 CCTV 공개 11/23

귀순병 CCTV 공개 11/23

총을 쏘던 추격조가 갑자기 사격을 멈춘다. 오씨가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오씨는 추격조가 총을 쏘던 지점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특수부대 관계자는 “오씨가 먼 거리에서 쏜 총에 맞았다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근거리라 그대로 총탄이 관통해 부상이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엎드려쏴 자세의 북한군 1명은 일어난 뒤 자동소총을 들고 남쪽으로 달린다. 그러다 뭔가 깨달은 듯 곧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돌아간다. 이때가 오후 3시15분쯤이었다.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고, 거리도 수m 정도였지만 엄연히 MDL을 넘어간 것은 분명하다고 유엔사는 강조했다.

유엔사 관계자는 “영상에 나온 군정위 건물엔 창문이 4개가 나 있다. 위에서부터 2개까지가 북측 지역이고, 나머지 2개 이후부터는 남측 지역”이라며 “북한군이 자신이 MDL을 넘은 것을 알고 잠시 당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시17분쯤 JSA 일대의 긴장감은 최고조가 된다. 북한군 증원병력 11명이 자동소총을 들고 방탄모, 방탄복을 갖춰 입은 뒤 김일성 친필비 앞에 모인다. 3명이 더 합류한다. 이들 중 1명은 저격용 소총으로 보이는 듯한 총기를 갖고 있고, 2명은 등에 통 형태의 배낭도 지고 있다. 정보당국자는 “로켓추진수류탄(RPG)과 같은 중화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영상 속 북한군 증원 병력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북한군 지휘부가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그들을 지나간다. 현재 북한군 판문점 대표는 박림수 소장이다. 북한군 증원 병력은 한동안 남쪽을 지켜보더니 곧 북측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미군으로 이뤄진 JSA경비대대도 전 부대에 비상을 걸어 무장을 완료해 맞대응했다. 판문점 일대를 맡은 육군 1군단은 1급 경계태세에 들어갔고, 공군은 초계 비행 중인 KF-16 2대를 1군단 지역 상공으로 급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군의 경고방송이나 경고사격은 없었다. 그리고 증원 병력의 엄호 속에 3시55분쯤 쓰러진 오씨를 구출하는 작전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긴박했던 남북 간 대치 상황은 서서히 풀린다.

유엔사 군정위 관계자는 22일 JSA의 MDL에 다가간 뒤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를 엄중한 어조로 항의하는 성명서를 읽었다. 북한군은 성명서 낭독 장면을 캠코더로 촬영했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 이후 북한은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끊었기 때문에 구두로 성명서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72시간 다리’

판문점 서쪽 지역을 흐르는 하천인 ‘사천(砂川)’에 있는 다리로, 북한군이 1976년 72시간 만에 건설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에서 판문점으로 오려면 사천을 건너야 하는데 판문점에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지기 전인 76년 8월 도끼 만행 사건 때까지 북한군은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용했다. 사건 이후 유엔군이 판문점에도 군사분계선을 그어야 한다고 하자 북한군이 왕래를 위해 새로 건설한 다리가 72시간 다리다. 2010년 콘트리트로 다시 지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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