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위폐 의혹, 언제까지 증거 타령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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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과 중국에서 각각 입수했다는 '수퍼 노트(북한산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지폐)'의 실물을 공개했다. 이들이 밝힌 입수 경위는 충격적이다. 김재원 의원은 "서울에서 평양의 고위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조선족 출신 한국인 2명이 북한 땅에 들어가 직접 받아왔다"면서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평양의 간부에게 연락해 위폐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문수 의원은 "탈북자 단체를 통해 지난달 중국 단둥(丹東) 개발구에서 70달러를 주고 무역상으로 활동하는 북한 보위부 소속원에게서 구입했다"며 진짜와 구별하기 힘든 100달러짜리 지폐를 제시했다.

두 의원의 주장은 "미국은 북한이 분명히 위폐를 제조했다고 판단하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이태식 주미대사의 발언에 뒤이어 나왔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두 의원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북한의 위폐 제조와 불법 유통은 이미 증거 차원의 문제를 넘어섰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정부와 여당은 "북한이 만들었다는 구체적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 밝힐 입장이 아니다" "아직 정황 증거 수준에 불과하다"며 증거 타령만 계속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위폐 제조는 통화주권이 걸린 문제로,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당사국인 미국 입장에서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6자회담과 남북 관계를 내세워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계속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면 위폐 문제의 해결은커녕 한.미 관계만 악화할 뿐이다.

정부는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문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는 안 된다. 정부가 가진 채널을 총동원해 신속하게 조사를 벌여 진상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미국과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북한에 경고할 것은 경고하는 정정당당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더 이상 수수방관할 상황이 아니다. 단호하고 신속한 조치를 정부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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