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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확립, 수탁사업, 기관 비총액 … 항목 봐도 도통 모를 부처 특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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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등으로 한 차례 소환됐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9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재소환됐다. 이 전 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등으로 한 차례 소환됐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9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재소환됐다. 이 전 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편성한 일반 부처의 특수활동비는 총 3217억6800만원이다. 국정원을 제외한 19개 일반 부처의 수치다. 일반 부처는 국정원 특수활동비(총액만 공개)와 달리 항목 내역은 공개한다. 그러나 사용처 파악이 여전히 어려운 ‘난수표 예산’이다.

3217억, 국정원 몫 포함된 난수표 #검찰 특활비, 법무부에 상납 의혹 #홍준표 “법무장관·검찰총장 수사를” #국회도 내년 특활비로 65억 책정 #“국회가 비밀 활동하나 … 폐지해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19일 집계한 ‘부처별 특수활동비 편성 현황’과 더불어민주당이 갖고 있는 2015년의 ‘2016년 특수활동비 편성 내역’ 자료에 따르면 일반 부처의 특수활동비 역시 어디에 쓰는 돈인지 추정하기 어려운 그림자 속의 예산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도 특수활동비로 ‘수탁사업(우편사업특별회계)’ 5억1800만원을 올렸고 법무부는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70억3700만원), ‘교정교화’(10억8600만원)를, 공정거래위원회는 ‘기관운영 비총액’(3500만원)을 책정했는데 사용처는 비공개다. 2015년 1억8000만원이었던 국무조정실의 ‘정당·시민사회 등 국민과의 소통 강화’ 예산은 그간 계속 편성돼 오다 내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됐는데 그 사유도 공개되지 않았다. 2015년 당시 특수활동비 편성 현황을 종합했던 손낙구 정책보좌관(김병욱 민주당 의원실)은 “지금도 나는 통일부의 특수활동비인 ‘통일정책 추진활동’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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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부처의 특수활동비는 누구에게, 어떤 개별 사업에 쓰는지가 비공개라 전언으로만 파악해야 한다. 복수의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법무부의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은 한국을 드나드는 외국인 중 ‘위해 인사’를 확인하고 이들의 해외 동선을 추적하는 데 쓰는 예산이다. 감사원이 내년 특수활동비로 ‘감사활동 경비’ 예산 30억9600만원을 올렸는데 여기엔 공직사회에 노출할 수 없는 암행 감사활동비가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대응활동’은 국내 기업들의 조세 포탈을 추적하기 위한 해외에서의 정보 수집비라고 한다.

이처럼 특수활동비는 수사·안보·치안 등의 은밀한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 사용 내역을 가리는 ‘특혜’를 줬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상문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특수활동비 중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 때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2차관 재임 시절 1억19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유흥비로 사용했다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입법부인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도 예산안 중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65억7200만원이다. 윤소하 의원에 따르면 ▶의정 지원 23억2800만원 ▶상임위 운영 지원 25억2800만원 ▶의회 외교 6억1600만원 ▶사무처 기본경비(국회의장단) 11억원 등이다. 국회의장단, 교섭단체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등이 사용한다. 이 중 18억5200만원의 ‘입법활동 지원(교섭단체 지원)’이 있는데 이를 3개 교섭단체로 나누면 여야 원내대표에겐 6억원가량이 간다.

기획재정부의 지침대로라면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국회 의정활동은 ‘기밀 유지에 준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윤 의원은 “관행이란 이름하에 지속된 특권인 특수활동비를 국회부터 폐지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 특수활동비 청문회 추진”=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9일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검찰의 수사와 관련, 법무부가 검찰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맞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로부터 매년 100억여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법무부도 같이 처벌하는 게 형평에 맞는 게 아니냐”며 “수사기관도 아닌 법무부가 왜 검찰로부터 매년 상납받나. 현 검찰총장을 비롯한 역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도 구속 수사하는 게 성역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 차원에선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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