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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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 아들 살려내요, 내아들. 멀쩡하게 걸어들어가 이렇게 다 죽어 나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요.』
15일 하오 3시30분 서울 한양대병원 5층 제2 중환자실.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한채 인공호흡기로 겨우 숨만 쉴 뿐 뇌사상태에 빠진 아들 명노열군 (17)을 앞에 하고 어머니 이옥순씨 (39)가 울음을 터뜨린다.
지난 6일 수원시 화서동 여고생 피살사건 용의자로 수원경찰서에 연행된 명군이 형사계 지하실 등에서 자백을 강요하는 조광식 경장 (33)과 이왕재 순경 (32)에게 포승에 묶인 채 구타와 몽둥이 찜질 등 갖은 고문을 당하다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12일 상오10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묵은 불씨가 살아나 전직 치안총수가 구속되는 마당에 다시 경찰의 고문으로 한 생명이 죽음의 기로에 선 것이다.
양쪽 발바닥과 엉덩이에 시퍼렇게 피멍이 들고 뇌부종·신부전증세의 명군은 인공호흡기만 제거하면 곧 숨이 멎을 위급한 상태. 의료진은 『발바닥의 피멍정도를 보아서는 바로 일어설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건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병원을 지키고 앉아 보안유지에만 급급하던 수원경찰서 형사들은 명군의 소생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취재진이 몰려들자 사경을 헤매는 명군만 동그마니 남겨두고 모두 줄행랑 쳐버렸다.
그러고도 경찰은 『현장검증중 도망치다 언덕에서 굴렀던 것이 원인』 『명군이 본드환각제를 상습 흡입했다』고 주장.
가족들은 『우리 아이는 병원근처는 가본 일이 없을 만큼 건강했고, 본드는 더더욱 모르는 일』이라고 분노에 찬 항변이었다. 수술중 숨지면 경찰이 또 생떼를 쓸까 두려워 수술을 거부하던 아버지 명공명씨(48)는 『마지막 시도를 해보자』는 의사의 권유에 못 이겨 15일 하오 떨리는 손으로 수술청약서에 서명을 했다.
수술실로 멀어져 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 이씨가 다시 울부짖는다.
『법을 다스린다는 놈들이 생사람을 때려죽이다니. 노열아 이놈아, 제발 살아라. 살아서 억울한 누명이라도 벗어야제.』 <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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