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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사업? 체류질서? … 정부 부처의 '난수표' 특수활동비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편성한 일반 부처의 특수활동비는 총 3217억6800만원이다. 국정원을 제외한 19개 일반 부처의 수치다. 일반 부처는 국정원 특수활동비(총액만 공개)와는 달리 항목 내역은 공개한다. 그러나 사용처 파악이 여전히 어려운 ‘난수표 예산’이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19일 집계한 ‘부처별 특수활동비 편성 현황’과 더불어민주당이 갖고 있는 지난 2015년의 ‘2016년 특수활동비 편성 내역’ 자료에 따르면 일반 부처의 특수활동비 역시 어디에 쓰는 돈인지 추정하기 어려운 그림자 속의 예산이다.

자료=윤소하 정의당 의원실. 단위 백만원.

자료=윤소하 정의당 의원실. 단위 백만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도 특수활동비로 ‘수탁사업(우편사업특별회계)’ 5억1800만원을 올렸고, 법무부는 ‘외국인 체류질서 확립’(70억3700만원), ‘교정교화’(10억8600만원)를, 공정거래위원회는 ‘기관운영 비총액’(3500만원)을 책정했는데 사용처는 비공개다. 2015년 1억8000만원이었던 국무조정실의 ‘정당·시민사회 등 국민과의 소통 강화’ 예산은 그간 계속 편성돼 오다가 내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됐는데 그 사유도 공개되지 않았다. 2015년 당시 특수활동비 편성 현황을 종합했던 손낙구 정책보좌관(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은 “지금도 나는 통일부의 특수활동비인 ‘통일정책 추진활동’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반 부처의 특수활동비는 누구에게, 어떤 개별 사업에 쓰는지가 비공개라 전언으로만 파악해야 한다. 복수의 국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법무부의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은 한국을 드나드는 외국인 중 ‘위해 인사’를 확인하고 이들의 해외 동선을 추적하는데 쓰는 예산이다. 감사원이 내년 특수활동비로 ‘감사활동경비’ 예산 30억9600만원을 올렸는데 여기엔 공직 사회에 노출할 수 없는 암행 감사 활동비가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대응활동’은 국내 기업들의 조세 포탈을 추적하기 위한 해외에서의 정보 수집비라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편사업특별회계 상 수탁사업을 놓고 국회 관계자는 “우리가 알기로는 국정원이 대테러 업무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테러단체 관련 우편물 감시하는 예산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특수활동비는 수사·안보·치안 등을 위한 은밀한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 사용 내역을 가리는 ‘특혜’를 줬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상문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특수활동비 중 12억 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 때 신재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는 2차관 재임 시절 1억19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유흥비로 사용했다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이 때문에 특수활동비에 관한 한 어느 부처, 어느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2018년도 예산안중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65억7200만원이다. 윤소하 의원이 집계한 내역에 따르면 ▶의정 지원 23억2800만원 ▶상임위 운영 지원 25억2800만원 ▶의회 외교 6억1600만원 ▶사무처 기본경비(국회의장단) 11억원 등이다. 이 돈은 국회의장단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상임위 위원장 등이 사용한다. 국회 특수활동비 중 18억5200만원의 ‘입법활동지원(교섭단체지원)’이 있는데 이 돈을 3개 교섭단체로 3분할 경우 여야 원내대표는 각각 6억원 가량의 영수증 없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2018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국회 의정 활동은 ‘기밀 유지에 준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국회는 민심을 읽고 법안을 만드는 공개 활동이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윤 의원은 “관행이란 이름 하에 지속된 특권인 특수활동비를 국회부터 폐지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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