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대륙과의 관계 재개할 때|소련의 올림픽참가와 한반도정세 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 국가존재 인정>
장두성부국장 = 소련이 결국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것을 공식 발표했고 중공도 17일 이전에 참가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로써 그동안 공산권이 보이코트 하지 않나 했던 우려는 말끔히 사라지고 서울올림픽은 이제 성공가능성이 확실해졌읍니다.
소련과 중공의 서울올림픽참가는 올림픽이라는 행사에 참가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그들이 한국의 국가로서의 존재와 국내 정치척 안정성을 인정한다는 정치적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김덕교 = 올림픽이 비정치적 행사라지만 소련과 중공의 서울올림픽참가는 정치적 의미를 갖지 않을수 없읍니다.
중공은 70년대 말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4대 현대화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국제적 여건의 조성에 노력해 왔고 소련도 전쟁위협을 줄이고 세계안보및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당프로그램(강령)이 85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옵니다. 한마디로 탈이데올로기내지 비이데올로기 차원의 국가관계 모색으로 방향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비록 비공식적이었읍니다만 한국과 중·소와의 꾸준한 접촉의 축적이 그들의 올림픽 참가라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볼수 있읍니다.
소련과 중공의 서울올림괵참가는 한·소관계나 한·중공관계에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호재교수 = 소련과 중공의 서울올림픽참가는 북한에 많은 메시지를 던져 줄 것입니다. 서울올림픽에 공산권국가들이 대거 참가하게 되면 북한에 대해 「우리도 한국과 교류를 하니까 너희도 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되고 북한의 방향전환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바로 이런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김 = 소련이 중공에 앞서 자신있게 서울올림픽참가를 발표한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 밀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소련이 이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북한을 의식하지 않고도 한국에 접근할수 있는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보아야 합니다.
85년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때 북한에 무기공급을 약속한 댓가로 소련이 한반도에서의 현상고정화와 한국접근 묵인이라는 양보를 북한측으로부터 받아냈다고 보아야합니다.
이 = 소련과 중공이 한국에 접근하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거꾸로 우리가 중·소에 접근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읍니다.
남북분단 4O년은 곧 대륙과의 단절이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는 대륙과의 관계를 지속시켜 왔는데 남북분단으로 한국은 대륙과 단절되고 해양세력이랄수 있는 일본과 미국쪽에 밀착되어 왔었지요.
이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대륙과의 관계가 재개되면-정식국교를 맺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단절의 시대를 청산하고 원래의 위치로 복귀하는 셈이 됩니다. 이것은 곧 남북분단을 해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민족통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장 = 지난 대통령선거기간중 노태우후보가 「서해안시대가 열린다」 「올림픽후 중공을 방문한다」는등 북방관계의 정책제시를 했는데 그 실현여부야 뒤로 미루더라도 그 자체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적극화될 우리의 북방관계 시나리오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결국은 중공·소련과도 공식관계를 맺게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되는게 아닌지요.

<북방외교 편중 금물>
이 = 정치인들의 제스처는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전문가들이 예견하고 구상한 것을 차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왕 제스처를 하려했다면 중공뿐 아니라 소련도 방문하겠다고 제의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북방외교는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장 = 사실 소련과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비공식적이지만 꾸준히 계속되어 왔죠. 예를들어 82년 타스통신의 간부 2명이 서울에 다녀갔었지요. 그러다가 83년9월 사할린상공에서 KAL기 피격사건이 발생하고나서 대화도 접촉도 모두 끊어졌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올림픽은 그때 끊어졌던 파이프 라인을 다시 이어놓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 소련의 대한 인식변화를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적 상호의존관계를 상당히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비정치적 영역에서의 관계는 빠른 속도로 가속화될 것입니다.
장 = 공산권국가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서울올림픽이 성공하면 북한이 한국에 갖고 있던 환상, 즉 공산혁명이라든가 무력통일같은 환상을 버리고 한국정부의 정통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신축성을 보일 것도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 북한의 대한·대미·대일의 비현실적 정책이 바뀔 것입니다. 북한이 비현실적인데서 탈피할수밖에 없는 상황전개가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이 = 북한 자체도 7O년대에 들어와 서방과의 관계개선의 불가피성을 기본적으로 인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보면 알수 있지요. 60년대까지만 해도 공격적이던 그들이 7O년대 초반을 넘으면서 방어적인 자세로 바뀝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의 전쟁도발가능성을 우려했읍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이제는 우리측에서 북한을 끌어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때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위험시하는 팀 스피리트작전 같은것도 완화해 나가는 여유를 보이고 미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먼저 북한측과 관계정상화를 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적극적 자세 말입니다.
장 = 중·소로 하여금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에게 접근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는 어떤것을 들수 있을까요.
김 = 냉전시대에는 군사적 이익이 경제적 이익보다 월등히 증요했지만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데탕트의 기운이 감돌고 있어 「경제적 고려」가 보다 중요한 계기가되고 있읍니다.
시장경제로의 변신을 꾀하고있는 중공은 4대 현대화계획의 추진을 위해, 소련은 시베리아개발을 위해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읍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중·소가 북한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군사적 이익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열강들 파워 가시화>
이 = 정치역학적인 측면에서 고려되어야할 것은 미·중·일 삼각체제로 인해 소련이 느끼는 동북아에서의 고립감입니다. 소련은 북한과의 군사적 밀착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에의 외교적 접근을 꾀하는 지정학적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읍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파워 플레이는 남북한을 카드로 사용하고 있고 특히 중·소입장에서 더이상 지연시킬 수 없는 전략적 고려가 이번 올림픽참가를 통해 가시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읍니다.
장 = 한국의 척극적인 북방외교가 미·일의 관점에서 결코「좋은 일」로만 받아들여 질수는 없다는 문제도 남습니다. 미·일이 우리이익에 합치될 만큼 진지한 중재노력을 해줄지, 아니면 어느단계가 지나면 오히려 견제세력으로 변할지도 의문입니다.
김 = 한·소, 한·중공의 관계진전이 이지역의 긴장완화에 이바지한다는 측면은 미국의 이익과 합치되지만 동시에 적지않은 외교적 부담으로 남게됩니다. 그것은 소련이 한국과의 밀착으로 지역내 미동맹세력사이에 발생할지도 모를 갈등을 겨냥해 소위「기회의 창문」(Window of opportunity)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 냉전기류가 이 지역을 감싸고 있을때는 우리는 미·일의 「해양세력」측에 서서 중·소의 「대륙세력」을 견제하는데 외교적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섬」과 같은 소극적 입지를 떨쳐버리고 「대륙의 이익」을 향해 밀도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미·일양국은 한·중·소의 협력관계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면 기존 한·미·일 관계에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우리의 북방외교에 있어 미·일의 협조는 별로 기대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새로운 이익 추구를>
장 = 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환경이 변하고 있읍니다. 북방외교를 비롯, 우리의 외교정책은 일원적인 것에서 다원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전략을 강구해야하지 않을까요.
김 = 「새로운 이익」을 과감히 쟁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새로운 외교」가 필요합니다. 미·일과의 긴밀한 협력이 가져다주는 「기존의 이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륙의 이익에 눈을 돌리는 신축성을 보여야합니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정치민주화를 위해서 과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상상력의 지평선을 넓히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 새로운 시대적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대륙외교에의 신중한 복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소에의 접근은 우리의 생활권을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북방외교의 추진을 위해선 미·일 못지않게 중·소도 우리의 협력국이 될수 있다는 인식을 갗고 적대감을 하루빨리 불식시켜야 합니다. <정리 = 이규진·김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