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 왜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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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2.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란 걸 처음 발견했다. 타원에 두 개의 초점이 있는데 초점의 성질을 이용하면 점화장치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응용을 할 수 있다. 타원의 초점 등을 어떻게 구하는지 설명하라.

교육인적자원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은 딱 네 가지만 금지했다. ▶단답형이나 선다형 문제 또는▶특정 교과의 암기 지식을 묻고▶수학.과학 관련 문제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거나▶외국어 지문을 번역하거나 해석하는 문제 등이다. 언뜻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교육부는 문제 1.2를 두곤 다른 판단을 했다. 21일 울산대 올해 수시 2학기 모집 때 출제된 문제1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을 어겼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서울대의 2008학년도 정시논술 예시문항인 문제2에 대해 '무난하다'는 의견을 냈었다. 수학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 비슷한 유형인데도 그렇다. 그래서 "잣대가 애매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논술 가이드라인이 비교육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7차 교육과정은 창의적 사고력을 강조한다"며 "이번에 교육부가 가이드라인을 어겼다고 지적한 문제들은 이런 점에서 좋은 문제"라고 말했다. 논술심의위에 참여한 한 교수도 "(교육부와 논술심의위원들이) 수학 쪽 문제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며 "정말 논술인지 아닌지, 과학적 사고를 위해 어떤 게 바람직한지 교육적이고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논술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강하다. 성균관대 손동현 학부대학장은 "대학 입시를 갖고 교육부가 이러는 게 한국적 특이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김광웅 교수도 "어떻게 한 줄, 한 편에 맞추란 얘기인지, 대학을 정부의 하위 소속 기관쯤으로 여기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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