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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원회'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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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가기록원장도 이날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한국전쟁, 5.16 군사쿠데타, 광주민주화 운동, 삼청교육대 등 현대사의 대형 사건들과 관련된 기록을 공개했다. 기록원 측은 "각종 과거사 위원회들이 참고 자료로 쓸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정리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후세에 교훈을 남긴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 중복 조사, 행정 낭비=현재 운영 중인 정부기관 산하의 과거사 관련 기구는 16개. 노근리사건, 삼청교육, 일제강제 동원 등 개별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위원회뿐만 아니라 국정원.경찰청.국방부 등이 만든 자체 위원회까지 난립해 있다. 19세기 말 일어난 동학혁명(1894년)의 참여자 명예회복을 위한 위원회도 있다. 16개 위원회의 올 한 해 예산은 1800억원에 달한다. 특수임무수행자보상위(792억원)와 제주 4.3진상규명위(268억원), 진실.화해위(110억원) 등 예산이 100억원이 넘는 위원회가 6곳이나 된다. 이들 위원회서 근무하는 인력도 연인원 600명이 넘는다.

각종 명칭의 위원회들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같은 사건이 이중, 삼중으로 조사되고 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지난해 12월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조작된 것"이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가 "고문으로 만들어낸 조작극"이라고 결론 내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청학련 사건은 경찰청 과거사위도 '10대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해 조사 중이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지난해 말 "5공의 학원 녹화사업은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역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전 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문건까지 제시했던 사건이다.

삼청교육대와 실미도 사건은 각각 관련자 보상위원회가 있지만 국방부 과거사위가 1차 조사대상으로 선정했다. 경찰청 과거사위가 조사하겠다고 밝힌 보도연맹과 나주부대 학살사건은 진실.화해위가 진실 규명 신청을 받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양민학살'에 포함된다.

한애란 기자

[뉴스 분석] 정권 차원 과거사 조사는 국민 분열
민간 연구자 중심 신중히 접근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15 경축사를 통해 "역사는 미래를 창조하는 뿌리"라며 과거사 진상 규명을 천명했다. 이후 정부 산하 각종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과거사 정리를 통해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미래를 창조하겠다는 취지는 상당한 공감을 샀다. 그러나 관련 기구들이 난립해 기능이 중복되고, 정리작업 자체가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대표는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과거 청산은 국민을 분열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체계나 원칙 없이 무질서하게 과거사위를 만들다 보니 같은 사건을 중복 조사하기도 하고, 인력과 예산이 낭비된다"며 "효율성을 고려해 위원회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이 과거사를 선거전략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이 야권에선 제기되고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데 따른 한계를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과거사의 엉킨 실타래를 푼다고 하면서 오히려 더 꼬여가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특정 정파나 정권 차원의 일방 통행을 지양하고 민간 연구자 중심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한 접근이 요청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새 연구 성과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식민지 시대 연구는 '저항 대 친일'이란 이분법보다 문화사.생활사적 접근을 강조한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과거사 규명의 궁극적 목적이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정부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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