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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시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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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디지털담당

김영훈 디지털담당

우리가 좀 살게 된 이후로는 이번이 최대인 것 같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관심 말이다. 안보 심각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걱정했던 돌발 행동이 없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손님맞이는 중국·일본보다 뒤처지지 않았다. 미·일 골프 라운드의 귓속말이 궁금하나 양국 군인과 함께한 한·미 오찬의 상징성은 컸다. 자금성을 비워 황제 대접을 한 중국의 통은 컸으나 ‘독도 새우’의 디테일도 만만찮다. 그 끝에 얻은 최대 성과는 불협화음이 없었다는 점이다. 긍정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이어서 다행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생기는 의문이 있다. “그런데 아시아는 뭘 하고 있나.”

염장을 지른 곳은 미국 언론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본 총리를 트럼프의 충실한 조수에 비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무례했다. 우리 대통령을 ‘못 믿을 친구’라고 의심했다. 중국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극진해도 중국에 대한 미국 조야의 시선이 좋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3국은 미국을 향한 외교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비무장지대 방문이 성사되지 못한 건 참 공교롭다. 안개와 중국발 황사가 문제였다. 오비이락일 뿐인데 동북아 현실을 보는 듯해 개운하지는 않다. 그래서 꼬리를 무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아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나간 광화문에는 TCS가 있다. 3국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이다. 2011년 한·중·일이 비용을 갹출해 만들었다. 사무실 개설만으로 ‘동아시아 경제 블록’ 같은 김칫국을 마시는 이도 있었다. 어쨌든 협력의 제도화가 목표였다. 그러나 위기가 오자 제도는 멀고 현실적 힘은 가까웠다. 아시아의 자기 해결 능력은 밑천을 다 드러내고 말았다. 3국이 1년에 20번 정도 장관급 회담을 한다는데 공허하기만 하다. 그래서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시아는….”

경제력을 참작할 때 아시아만큼 지역 현안에 무능한 곳은 없다. 원수지간을 만드는 전쟁은 어디에나 있었다. 유럽도 100년 전쟁을 했다. 그러나 역내 외교적 해결의 경험을 켜켜이 쌓아왔다. 아메리카는 수퍼 파워를 중심으로 공존의 질서를 형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시아는 무기력하다. 분쟁과 무역의 실타래는 여전히 꼬여 있다. 한·중·일은 TCS를 잊어버린 듯하고, 50주년을 맞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아직도 이름뿐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답할 재간이 없다.

아시아 지도자들이 다음주 필리핀에서 모인다. 부디 역내 해결 역량이 한 걸음이나마 나아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시아는….”

김영훈 디지털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