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36. 감방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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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7명을 살해한 살인범 김대두. 그는“죽기 전에 신중현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간수들이 머무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쇠난로 옆에 앉았다. 연쇄 살인범 김대두가 들어왔다. 온몸이 밧줄로 꽁꽁 동여매어져 있었다. 밧줄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와 마주 앉았다.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섬뜩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신중현씨 팬이라 꼭 만나보고 싶었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람은 대체 왜 그렇게 많이 죽인 거요?"

별로 할 말도 없고 해서 평소 궁금해 하던 걸 물어봤다.

"홧김에 죽였소. 내가 전과자인데 사회에 돌아갔더니 취직도 안 되고 사람들이 벌레 보듯 해서요."

"그래도 그렇게 사람을 죽이면 쓰나…."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그런 짓은 안 했을 거요."

살인 동기가 너무 단순해 놀랐다. 살인자라면 뭔가 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사회가 사람을 받아주는 게 그만치 중요하구나…. 구치소의 첫 인상은 그렇게 강렬했다.

며칠 뒤 정식으로 방을 배정받았다. 대도 조세형과 한 방을 쓰게 됐다. 원래 세 명이 쓸 방에 일곱 명이 수감됐다. 옆으로 몸을 세워 칼잠을 자야 했다. 나는 그 방에서 '범털'이었다. 범털은 돈이 좀 있어 감방의 살림을 대주는 사람이다. 범털은 방에서 제일 따뜻한 상좌를 차지했다. 작은 물건 따위를 훔쳐 들어온 사람들은 '개털'이었다. 그들은 철새처럼 형무소를 드나들었다. 여름엔 밖으로 나다니다 추운 겨울을 감방에서 나려고 일부러 일을 저질러 잡혀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조세형은 '주방장'이었다. 주방장은 간식 분배를 맡았다. 그의 승낙 없이는 간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조세형은 돈은 없었지만 간 큰 절도범인 데다 성격이 활달했기에 주도권을 잡았던 게다. 감방에서 만난 젊은 시절의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감방 안 선반에는 먹거리가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그 중 크림 건빵 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빠다(버터)'에 설탕을 개서 반으로 쪼갠 건빵에 발라 먹으면 꿀맛이었다.

감방에선 '뺑기통(변기)' 사용도 순서가 있었다. 커다란 뚜껑이 달린 플라스틱 통이 변기였다. 변기는 방 구석에 있었다. 아침이면 범털부터 개털까지 순서대로 일을 봤다. 방안에 변기가 있으니, 그 냄새가 어딜 가겠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전부 수건으로 코를 막고 앉아 있었다. 특히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의 차례가 오면 모두 코를 막고 바닥에 엎드렸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추억할 수 있지만….

여가 시간이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무용담을 늘어놨다. 조세형은 역시 대담했다.

"청계천 상가들이 밤에는 셔터를 내리잖아. 방범 대원들은 그 옆에서 드럼통에 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쫓지. 그럼 나는 일행이랑 커다란 트럭을 몰고가는 거야. 손에는 물건을 체크하는 척하며 가짜 서류를 들고 '오라이 오라이'하며 트럭의 짐칸을 가게 앞으로 대게 하지. 그럼 방범대원들도 그냥 '물건 실으러 왔나 보다'하고는 신경을 안 써. 그럼 한 녀석이 내려와 펜치로 딱 한 번만에 자물쇠를 잘라버려. 셔터를 올리고 물건을 트럭에 때려 싣는 거지. 그리곤 유유히 떠나면 끝이야…"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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