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말문 연 이인규 "盧 논두렁 시계 보도, 국정원 소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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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59)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경위를 밝혔다. 그는 ‘논두렁 시계’ 논란과 관련해서는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시계 수수 내용을 언론에 흘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박종근/2009/06/12]박연차 수사발?박연차 수사발표/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후 돌아서고 있다. 오른쪽은 홍만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종근/2009/06/12/대검]

[[박종근/2009/06/12]박연차 수사발?박연차 수사발표/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후 돌아서고 있다. 오른쪽은 홍만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종근/2009/06/12/대검]

이 전 중수부장은 7일 미국 현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라는 에이(A)4 용지 2장짜리 입장문을 한국 언론에 보내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국정원이 수사 가이드라인 및 언론대응 지침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로펌을 그만둔 후 미국으로 출국해 여행 중”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하여 해외로 도피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달리하신 것은 진실로 가슴 아픈 일로 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하여 조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중수부장 재직 시절 국정원 간부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고급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리라고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정원 강모 국장 등 2명이 찾아와 원세훈 원장의 뜻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자신이 화를 내며 질책하자 ‘없던 것으로 하자’며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전 부장은 "이후 '논두렁 시계' 보도가 연이어져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며 "이것이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와 관련하여 알고 있는 대략의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지난달 23일 국정원 간부들이 이 전 부장을 만나 시계 수수 건을 언론에 흘려줘 적당히 망신을 주는 선에서 활용해달라고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언론 플레이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실행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국정원은 이 전 부장을 정식으로 수사 의뢰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달리하신 것은 진실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일하던 로펌을 그만둔 후 미국으로 출국하여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하여 해외로 도피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은 없었으며 검사로서 소임을 다하였을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하여 조사를 받겠습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보도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 4. 14. 퇴근 무렵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저를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하였습니다.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화가 난 제가 ‘원장님께서 검찰 수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원장님께도 그리 전해 주십시오.’라고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이에 강 국장 등이 크게 놀라면서 ‘왜 이러시냐?’고 하기에 제가 화를 내면서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강하게 질책하였습니다. 이에 강 국장 등 2명은 ‘자신들이 실수한 것 같다면서 오지 않은 것으로 해 달라’고 하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으며 저는 이러한 사실을 위에 보고하였습니다.

그 후 2009. 4. 22. KBS에서 ‘시계수수 사실’ 보도, 같은 해 5. 13.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2015. 2. 23.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검찰이 시계수수 사실을 흘려 망신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보도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국정원의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사실을 언급하였는데 약속을 어기고 보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와 관련하여 알고 있는 대략의 내용입니다.

이 인 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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