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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밟혀 죽다니”…‘5·18 가마니 시신’ 광주교도소 발굴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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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 중앙포토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 중앙포토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유력하게 추정됐던 곳이다. [뉴시스]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유력하게 추정됐던 곳이다. [뉴시스]

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담장 인근. 작업모를 쓴 작업자 4명이 호미로 조심스럽게 땅바닥의 흙을 걷어내고 있었다. 곁에 있던 작업자들은 일정량의 흙이 모이면 수레를 이용해 담장 한쪽으로 옮겼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들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된 장소에 대한 발굴 현장이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당시 밟혀 죽은 시신 등 12구를 가마니에 싸 암매장했다는 계엄군 지휘관의 증언을 토대로 본격 발굴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6일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 암매장에 대한 발굴이 시작된 가운데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발굴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 암매장에 대한 발굴이 시작된 가운데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발굴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18 당시 행방불명된 시민들이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이 본격 시작됐다.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암매장 발굴은 80년 5월 이후 처음이어서 37년 전 사라진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5월 단체, “6일, 문화재 발굴방식 착수” #“암매장 진실, 이르면 이번주 확인 가능” #광주교도소, 사망자 28명중 11구만 수습 #계엄군 지휘관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매장” #“좁은 방송차에 30명 태워 2~3구 밟혀죽어” #진술·약도 있는데도 37년간 진상규명 외면

5·18기념재단은 6일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 대한 콘크리트와 잡초 등 각종 장애물 제거작업을 마치고 이날 오전부터 문화재 발굴방식으로 암매장 추정지 발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옛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행불자들이 암매장된 장소로 지목돼왔다. 5·18 당시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는데 이중 시신 11구만 임시 매장된 형태로 발굴됐다.

발굴 장소는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바깥쪽 길이 300m 중 길이 115m, 폭 3~5m 구간이다. 80년 5월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부지로 재소자들이 일궜던 농장 인근 지점이다. 현재는 아스팔트 포장 시공과 주변에 주차장·테니스장 등이 조성돼 과거와 지형·지물이 달라졌다.

 5·18 당시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광주시민들. 중앙포토

5·18 당시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광주시민들. 중앙포토

5·18기념재단 측은 전체 발굴 지역을 40m씩, 모두 3단계로 나눠 조사에 착수했다. 이날부터 1단계 발굴이 이뤄진 40m 구간은 가장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된 장소다.

5·18기념재단 측은 1단계 발굴 지역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기까지 약 4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오는 9∼10일이면 암매장 유력 장소에서 1차적인 유해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발굴단은 전체 3단계 구간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기까지는 12일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번 발굴은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 지휘관이던 3공수 김모 전 소령이 작성한 약도와 진술조서, 시민 제보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김 전 소령은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에서 ‘관이 없어 가마니로 시신 2구씩을 덮고 묻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시신 12구 중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옮겨진 시신 2~3구는 밟혀 죽은 시위대였다’는 진술도 남겼다. 당시 시신들이 밟혀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비좁은 방송차량에 30여 명의 시위대를 태웠기 때문에 힘이 없는 시위대를 쓰러져 밟히고 질식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모습. 뉴시스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모습. 뉴시스

5·18 당시 광주에 파견된 제3공수여단 본부대장이던 그는 시신을 암매장한 곳이 담긴 약도도 남겼다. 5·18 당시 사망한 시민군을 암매장한 상황이 계엄군 지휘관의 진술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그의 진술에는 ‘교도소 담장에서 3m 정도 이격해 매장했다’ ‘전남대에서 방송차량을 이용해 시신 3구를 교도소로 옮겼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지만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5·18에 대한 신군부의 역사 왜곡과 정부와 군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암매장을 둘러싼 진실이 37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힌 것이다.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5·18사적지 22호인 옛 광주교도소는 5·18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격전지이자 시민군들이 고문을 당했던 장소다. 5·18 당시 이곳에는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한 곳이어서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돼 왔다. 1980년 5월 18일 31사단 96연대 제2대대가 지키고 있다가 21일 오후 5시30분 전남대에서 철수한 3공수여단으로 교체됐다.

당시 옛 광주교도소 인근의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3공수여단이 머무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5·18기념재단이 김 소장이 증언한 진술과 약도 내용의 신빙성을 높게 보는 것도 그가 당시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어서다. 이 곳은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가 “중장비로 땅을 파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지목한 장소 인근이기도 하다.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번 발굴 작업에 참여한 정일 대한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과거에 땅을 다시 판 곳은 황토색을 띠는 기존 흙보다 검은빛을 띤다”며 “흙 색깔 변화를 통해 30년 전 암매장이나 시신 이장 여부 등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5·18기념재단에는 김 소장의 증언 외에도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암매장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5·18 당시 3공수 사병이던 이모 전 병장이 1989년 1월 “광주교도소 구내에 시위대 사망시체 5구를 매장했다”는 진술을 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한편, 5·18 암매장지 발굴은 2002년부터 3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뤄졌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5월 단체들과 광주광역시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암매장 제보가 접수된 64건 중 중복된 12곳과 제보가 미흡한 46곳을 제외한 9곳에 대해 발굴 작업을 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5월 단체 관계자 등이 6일 옛 광주교도소 내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지 발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월 단체 관계자 등이 6일 옛 광주교도소 내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지 발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추정지. 뉴시스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추정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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