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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구종서<본사 논설의원>|양김은 가도 야당은 살아야|모든 정치세력 공존의 길찾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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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들은 지금 두 야당에 대해 미묘한 애증의 교차를 느낀다. 엄중히 응징하고 싶은 미움과 어떻게든 다시 키워야한다는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강력한 야당 없인 건전한 민주주의가 없다는 대명제 때문이다. 야당문제는 패배의 허탈감만으로 다룰순 없다. 장래의 정치구도와 5년후의 대통령선거를 내다보면서 거시적으로 접근해야한다.
오랫동안 이 나라의 권력은 청와대에 집중돼 있었다. 대통령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절대자였다. 그러나 제6공화정에선 그런 역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대통령의 권위나 영향력을 경시할순 없지만 의회와 정당이 제구실을 찾을 것이다.
민주정치는 정당정치다. 따라서 정당은 앞으로 의회정치의 주역이 된다. 각 정당이 이념과 노선을 다르게 할때 모든 계층이 골고루 대변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당은 지금의 보수 일색에서 보수·진보·혁신의 3당 정립체제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
민정당과 공화당은 대승적으로 통합되어 보수정당이 돼야한다. 민주당과 평민당은 지금보다 더욱 자유주의화하여 하나의 진보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금은 산업화과정에 나타난 근로세력을 대변할 혁신정당도 나올 때가 됐다.
여기서 혁신정당이란 영국 노동당류의 사회민주주의정당을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사회주의 목표를 추구하되 의회민주주의와 사유재산제를 존중한다. 12·16선거에 무소속 출마했다가 사퇴한 백기완후보 지지세력이 그 기반이 될수 있다.
혁신정당이 결성되면 그동안 우리 사회를 흔들어온 운동권과 재야가 다수 흡수되어 책임있는 정치조직으로 제도정치권에 편입된다. 그만큼 무책임한 행동을 자제하여 사회가 안정될뿐 아니라 기존 보수정당에 신선한 자극을 주어 정치도 한층 활성화된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민주·평민당과 그 보스인 양김의 향배에 집중돼 있다. 그들은 국민의 절대적지지를 받으며 유리한 여건에서 선거에 나섰다. 양김은 각기 출마해도 승리할수 있다고 믿었다. 최후까지 자신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최대의 원인은 양김의 단일화 실패다. 그밖에 민심의 오판, 선거운동의 오류도 들수 있다.
양김은 패배후 책임을 시인하거나 국민에 대해 사과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패배의 원인을 「원천적 선거부정」에 돌려 승복을 거부했다. 「원천적 부정」이라면 최초부터 시작된 전면적인 부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압승을 안겨준 호남이나 경남권 투표도 모두 부정이란 말이 된다.
물론 선거부정은 있었다. 그것은 어느 투표구의 투표수가 유권자수보다 많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명백하다. 그러나 그런 부정이 2백만표차로 이긴 노태우후보의 당선을 전복시킬 정도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라서 선거부정의 규명은 4·19나 필리핀식의 혁명적 방법이어서는 안된다. 결과를 역전시키지 못할 정도라면 사법적 절차에 따라 가려져야 한다.
지금 김영삼·김대중씨에 대한 비판은 무성하다. 그 내용은 두사람이 정권교체·군정종식에 실패한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나거나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험한 표현도 있다. 양김은 이런 성토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판론은 다음주장에서 설득력이 발견된다.
첫째는 인책론이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누군가 져야하고 그것은 양김 뿐이라는 주장이다. 단일화는 선거승리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유일의 조건이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가 어떻게 마련된 것인가. 그처럼 야당에 유리한 기회가 다시 올수 있겠는가. 양김은 고해하는 마음으로 반성해야 한다. 지도자라면 타율적인 문책에 앞서 자율적인 인책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둘째는 재출마 부가론이다. 그들은 5년을 못참아 기어이 출마했다가 끝내 패배했다. 따라서 5년후에 다시 나와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71년부터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등 3대를 거치는동안 실패를 거듭하다가 다음 후계자와 겨루기 위해 92년에 다시 출마하겠단 말인가…. 뒤로 물러나 5년후에 나설 야당지도자를 길러야 한다. 아니 후진을 위해 길을 비켜줘야 한다.
세째는 보수야당의 생존을 위해서다. 두 당이 어떤 형태로든 합당하지 않으면 민정당을 이기지 못한다. 당내 민주주의를 못하는 정당은 앞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양김이 지금처럼 카리스마적 권위로 당에 군림한다면 양당 통합이나 당내 민주주의는 어렵다. 지역감정도 청산하기 힘든다.
그러나 총선을 두달 남긴 지금 양김이 물러나는데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도력의 공백이 총선 전열을 교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가지를 생각할수 있다. 하나는 양김이 총선후 국민 여론을 존중하여 거취에 결단을 내린다는 전제로 일단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제2선에서 후원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합당은 못해도 대여공동전선을 펴서 후보를 조정하고 총선에 임하는 것이다.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비 없이는 균형있는 의회세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3당 정립체제의 일각이 될수도 없다.
양김이 아직도 6백만씩의 지지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중 다수가 야당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양김에게선 떠났다. 「노태우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노태우대통령」마저 거부하려 하지는 않는다. 정치 발전이 소수 특정인 때문에 정지돼서는 안된다. 양김은 가도 야당은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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