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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단풍구경 간다면…아무도 몰랐던 청송 신성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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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이운다. 반가운 편지처럼 찾아온 게 어제 같은데 우리는 어느새 ‘늦’이라는 접두사를 이 계절에 붙인다. 서운한 마음에 화려한 가을 때깔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단풍보다 눈부신 등산복의 행렬을 보는 건 질색. 사람 소리보다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낙엽 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렇다면 소문난 산이나 국립공원은 피해야 한다. 대신 풍광만큼은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경북 청송 신성계곡이다.

 경북 청송군 신성계곡은 아직까지 인적이 드물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에 포함된 지질 명소 4개를 품고 있고, 단풍도 아름다워 가을에 찾아가기 좋다. 신인섭 기자

경북 청송군 신성계곡은 아직까지 인적이 드물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에 포함된 지질 명소 4개를 품고 있고, 단풍도 아름다워 가을에 찾아가기 좋다. 신인섭 기자

청송은 2017년 5월 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제주도(2010년 지정)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다. 유네스코는 ‘다양한 지질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관광 활성화를 통해 지역 주민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곳’이라고 세계 지질공원을 정의한다. 청송에는 모두 24개 지질 명소가 있다. 이 중 10개가 주왕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신성계곡에는 4개 명소가 있는데 주왕산과는 전혀 생김새가 다르다. 독특한 지질이 단풍과 어우러진 풍경은 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주왕산처럼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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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송 신성계곡을 찾아가면 독특한 지질과 단풍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신인섭 기자

지금 청송 신성계곡을 찾아가면 독특한 지질과 단풍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신인섭 기자

신성계곡은 청송 안덕면에 있다. 여기 흐르는 계곡물이 안동시 길안면으로 이어지기에 길안천(川)이라고도 부른다. 신성계곡 길이는 약 15㎞. 4개 지질 명소 외에도 뱀처럼 꼬불꼬불한 계곡 곳곳에 비경을 품고 있다. 계곡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자동차를 타고 명소만 콕콕 찾아다니거나 12㎞에 달하는 계곡길을 걷거나. 청송군은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등재에 앞서 2013년 4월 계곡 곳곳의 지질명소를 보는 ‘녹색길’을 조성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조준도가 기암괴석 위에 세운 방호정. 이름 아침 안개 낀 길안천 풍경이 몽환적이다. 신인섭 기자

조선 중기 학자인 조준도가 기암괴석 위에 세운 방호정. 이름 아침 안개 낀 길안천 풍경이 몽환적이다. 신인섭 기자

조선 중기 학자인 방호 조준도(趙遵道)가 지은 방호정. 신인섭 기자

조선 중기 학자인 방호 조준도(趙遵道)가 지은 방호정. 신인섭 기자

10월26일 아침 신성계곡 남쪽에 있는 방호정(方壺亭)으로 향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조준도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정자다. 안개 깔린 계곡 한쪽, 45° 기울어진 단층이 뚜렷한 바위 위에 작은 정자가 앉은 모습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퇴적·융기·침식. 학창 시절 배웠던 지구과학 용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현주(47) 지질해설사의 설명이다. “화산이 9번 폭발한 주왕산에서 불과 관련된 지질 환경을 많이 볼 수 있는 반면 신성계곡에서는 물과 관련된 지질 명소가 많아요. 방호정 주변 풍광은 1억 년 전인 백악기 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지요. ”

방호정 옆으로 들어서면 길안천에 바짝 붙어 걸을 수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퇴적암을 보며 걷는 길이다. 신인섭 기자

징검다리를 넘나드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신인섭 기자
신성계곡의 지질명소를 보는 녹색길을 걷다 보면 호젓한 숲길도 만난다. 신인섭 기자
길안천 주변에는 어디선가 굴러 떨어진 퇴적암 바위도 볼 수 있다. 밀가루보다 고운 사암으로 이뤄진 바위. 신인섭 기자

방호정 옆 은행나무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숲을 지나 길안천에 가까이 다가갔다. 조약돌 깔린 길을 걷다가 징검다리를 좌우로 넘나들었다. 안개가 슬슬 걷히더니 수직으로 쩍쩍 치솟은 암벽이 드러났다. 바위 위쪽과 측면에 듬성듬성 물든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유유한 길안천에 바위의 형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모습도 신비로웠다. 조준도가 이곳에 방호정을 지은 것도 어느 가을날 감화를 받아서가 아니었을까. 넋놓고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피안(彼岸)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법하다.

2003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산사태가 벌어지면서 드러난 흰색 점점의 공룡 발자국. 신인섭 기자

2003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산사태가 벌어지면서 드러난 흰색 점점의 공룡 발자국. 신인섭 기자

방호정 건너편 나즈막한 산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산 사면이 깎였는데 이때 공룡 발자국 400여 개가 드러났다. 발이 큰 초식 공룡과 날렵한 육식 공룡이 걸어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역시 1억 년 전 것으로 추정한다. 단일 지층에서 발견된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 발자국 유적지다.

녹색길에서 볼 수 있는 만안 자암(紫巖) 단애. 붉은 바위라는 뜻으로 적벽으로도 불린다. 바위의 산화철 성분으로 인해 붉게 보인다. 신인섭 기자

녹색길에서 볼 수 있는 만안 자암(紫巖) 단애. 붉은 바위라는 뜻으로 적벽으로도 불린다. 바위의 산화철 성분으로 인해 붉게 보인다. 신인섭 기자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만안마을. 이곳에는 거대한 적벽(赤壁)이 솟아있다. 자줏빛 바위라 하여 자암(紫巖)이라고도 부른다. 길이 300m, 높이 50m에 달하는 붉은 암벽은 청송의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철분 함유량이 높아서 유독 붉게 보인다고 한다. 어김없이 바위 위쪽에는 붉은 단풍이 물들어 있다. 주변을 서성이다 보면 적벽과 단풍보다 더 붉은색을 만나게 된다. 맛있게 영근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이다. 녹색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사과 밭을 만나는데 어김없이 ‘사과를 따지 말라’는 호소문이 적혀 있다.

녹색길을 걷다 보면 사과 밭을 자주 만난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사과를 따가기도 하는데 이는 절도 행위다. 신인섭 기자

녹색길을 걷다 보면 사과 밭을 자주 만난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사과를 따가기도 하는데 이는 절도 행위다. 신인섭 기자

 신성계곡 뿐 아니라 청송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백석탄. 신인섭 기자

신성계곡 뿐 아니라 청송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백석탄. 신인섭 기자

만안마을을 지나면 고와리에 접어든다. 신성계곡의 하이라이트인 백석탄이 이곳 고와리에 있다. 백석탄(白石灘)은 ‘흰돌이 반짝이는 개울’이란 뜻으로 바위의 때깔이 고와서 마을 이름도 고와리란다. 계곡 1㎞ 구간에 하얀 바위가 분포해 있다. 석영과 장석의 함유량이 많아 바위가 밝은색을 띄는데 포트홀(Porthole)도 볼 수 있다. 포트홀이란 장구한 세월 물과 모래가 소용돌이 치면서 바위에 만들어낸 구멍이다. 이밖에 줄무늬 셔츠 같은 처럼 무늬가 확연한 ‘층리’, 바위가 굳기 전 생물체가 지나간 흔적이 또렷한 ‘생물교란구조’ 등을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자연교과서다.

물과 작은 돌멩이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구멍을 파낸 '포트홀'. 신인섭 기자

줄무늬가 뚜렷한 층리. 신인섭 기자
등받이 의자처럼 생긴 바위에 '세심대(洗心臺)'라고 음각이 돼 있다. 바위와 계곡물, 단풍이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신인섭 기자

지구과학이든 자연교과서든 학습에 별 관심없는 이에게도 백석탄은 매력적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압도적인 풍광 때문이다. 백석탄 포트홀 중에는 등받이 의자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있다. 여기에 앉으면 개울을 뒤덮은 눈부신 바위와 계곡 너머로 붉게 물든 단풍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에는 ‘세심대(洗心臺)’라 쓰여 있다. 이 바위에 앉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씻기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지금 같은 계절이라면 말이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 #기암괴석과 단풍 어우러진 독특한 풍광 #등산객 들끓는 주왕산과 달리 한산

청송 농원식당에서 먹은 백반.

청송 농원식당에서 먹은 백반.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청송 신성계곡까지는 300㎞, 자동차로 4시간 거리다. 신성계곡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주차다. 주요 명소에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청송군이 풀어야 할 숙제다. 녹색길을 전부 걷는다면 안내센터에 차를 세워두는 게 가장 좋다. 4명 이상이면 홈페이지(csgeop.cs.go.kr)나 전화(054-870-6111)로 지질 해설을 신청할 수 있다. 숙소는 주왕산 인근에 많다. 고즈넉한 한옥을 찾는다면 민예촌(054-874-0101), 편리한 시설을 선호한다면 2017년 여름 개장한 대명리조트 청송(1588-4888)을 추천한다. 안덕면에 있는 농원식당(054-872-4555) 음식 솜씨가 좋다. 메뉴판에 없는 백반(6000원)을 주문하면 얼큰한 국밥과 반찬 아홉 가지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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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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