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걱정' 물통 싣고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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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전 도시철도공사가 지하철 개통을 한 달여 앞두고 승객 대신에 대형 물통을 싣고 시운전을 하고 있다. [대전시도시철도공사 제공]

다음달 중순께 개통될 예정인 대전지하철이 요즘 엉뚱하게 승객 대신 대형 물통을 싣고 시운전을 하고 있다. 까다로운 선거법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대전시 도시철도공사는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이달 초부터 실제 승객을 태운 것을 가상하는 영업 시운전에 들어갔다. 현행 도시철도안전규칙 9조에 따르면 지하철을 신설할 때는 개통 전에 60일 이상 반드시 시운전을 하도록 돼 있다.

시는 영업 시운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당초 장애인과 어린이.어른 등 연인원 1만5000명의 시민을 무료로 태우고 운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을 무료 시승 행사에 초대하는 것은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염홍철 시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선거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린 것이다.

선관위는 또 유권자가 아닌 어린이 등 미성년자를 태우는 것도 간접적인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결국 시와 도시철도공사는 시민 초청 시승 행사 계획을 모두 취소했다.

대신 고육지책으로 대형 물통을 전동차에 싣고 영업 시운전을 하고 있다. 하루 12편성의 전동차 중 1편성(객차 4량)에 1200ℓ들이 플라스틱 물통을 한 량당 최고 13개씩 싣고 달린다. 승객이 가득 찼을 때를 가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물탱크의 경우 승객의 하중을 대신할 수 있을 뿐 정작 중요한 승차감이나 불편한 점, 개선점 등은 파악할 수 없어 '반쪽 시운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도시철도공사 조종현 차량팀장은 "개통 후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시운전 때 승객을 태우는 것이 꼭 필요하지만 까다로운 선거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통 시운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04년 4월 개통된 광주지하철은 지방선거와 겹치지 않아 개통 4개월 전부터 시민 초청 무료 시승 행사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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