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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물갈비, 냄비 칼국수 … 반 세기 내공 먹자골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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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푸드 트립 │ 충무로

충무로엔 30~50년 된 노포가 많다. 사진은 저녁마다 테이블을 내놓고 손님을 맞기에 골목은 늘 활기찬 분위기다. [송정 기자]

충무로엔 30~50년 된 노포가 많다. 사진은 저녁마다 테이블을 내놓고 손님을 맞기에 골목은 늘 활기찬 분위기다. [송정 기자]

요즘 뜨는 동네? 맛집 거리다. 이런 도심 핫플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푸드트립’, 이번에는 노포가 몰려 있는 서울 충무로다.

60~80년대 개업, 2대째 영업 여럿 #푸근한 분위기에 푸짐한 인심 매력 #어둑어둑해져야 문 여는 가게 많아

서울 중구 충무로. 국도극장·스카라극장·명보극장·대한극장 등이 모여 있다 보니 영화사와 제작자, 배우가 모여들어 한국 영화의 중심지로 영광을 누렸다. 자연스레 식당도 붐볐다. 1987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한 ‘부산복집’의 최상해 사장은 “70~80년대 충무로는 어느 가게나 장사가 잘됐다고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 기획사들이 90년대 말 강남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멀티플렉스가 속속 생기며 국도극장(99년 폐관), 스카라극장(2005년 폐관), 명보극장(2008년 폐관) 등이 문을 닫았고 충무로도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영화산업과 함께 충무로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인쇄산업도 예전 같지 않다. 크고 작은 몇몇 인쇄소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인쇄소와 함께 충무로를 지킨 게 오래된 식당들이다. 60~80년대 문을 연 노포들은 지금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킨다. 다행히 2016년부터 노포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11년째 충무로의 한 회사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 심선애씨는 “깔끔하고 예쁜 식당을 찾는다면 이곳은 정답이 아니다”며 “하지만 육수를 계속 내주는 칼국수 집 등 충무로 노포엔 푸짐한 인심 같은 특유의 매력이 있어 함께 가는 사람마다 다들 좋아하더라”고 설명했다.

충무로 푸드트립은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5번이나 6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5번 출구부터 남산스퀘어빌딩, 6번 출구부터 명보사거리까지 ‘ㅁ’자 블록에 식당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제법 쌀쌀한 바람을 피해 즐길 수 있는 따뜻한 탕과 백반, 칼국수가 주요 메뉴다.

게장백반 유명한 진고개, 값이 착한 부산복집

30년 넘은 단골부터 색다른 맛에 노포를 찾는 20~30대 젊은층까지 다양한 고객이 찾아오는 부산복집. [송정 기자]

30년 넘은 단골부터 색다른 맛에 노포를 찾는 20~30대 젊은층까지 다양한 고객이 찾아오는 부산복집. [송정 기자]

우선 6번 출구에서 명보사거리 쪽으로 걷다 보면 왼쪽에 오래된 타일과 유리창에 ‘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곳이 ‘진고개’다. 63년 문을 연 후 2대째 이어오고 있다. 게장백반과 불고기가 대표 메뉴인데 요즘처럼 날이 추워지면 낮부터 어복쟁반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르신들이 좌석의 절반을 차지한다.

진고개에서 충무로역 방향에 있는 티마크 호텔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블록 더 안쪽에 ‘부산복집’이 있다. 복매운탕 한 그릇 가격이 1만2000원으로 다른 복집보다 저렴해 요즘엔 대학생도 많이 찾는다.

국수를 좋아한다면 부산복집에서 을지로 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사랑방칼국수’에 가야 한다. 68년 문을 연 곳인데 넉넉한 양의 백숙과 반찬을 주는 백숙백반과 양은냄비 가득 칼국수를 담아주는 칼국수가 대표 메뉴다. 충무로역 7번 출구 뒤쪽 골목에 있는 낡은 붉은색 간판의 ‘작은분식’과 진양상가로 이어진 먹자골목에 있는 ‘충무로칼국수’도 칼국수로 유명하다.

원더브레드에서 바밤바라떼로 입가심

트렌디한 카페가 드문 충무로에 맛있는 빵과 음료로 소문난 원더브레드. [송정 기자]

트렌디한 카페가 드문 충무로에 맛있는 빵과 음료로 소문난 원더브레드. [송정 기자]

점심 식사 후엔 건너편 필동으로 건너간다.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와 200m 정도 걸어가면 남산골한옥마을이, 4번 출구에서 퇴계로 쪽 충무로역 2번 출구 앞엔 대한극장이 있다. 큰 길을 건너기 전에 따뜻한 차나 달콤한 디저트가 생각난다면 사랑방칼국수에서 명동 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원더브레드’에 들러보길. 따뜻한 바밤바라떼와 생크림·단팥이 반반씩 들어 있는 빵을 맛볼 수 있다.

파란색 채반에 해산물 한가득, 필동해물

충무로

충무로

사실 어둠이 내려앉아야 충무로 맛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저녁에만 문을 여는 노포들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필동주민센터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가다 보면 CJ인재원이 나오는데 입구를 지나 열 걸음 정도 걸어가면 ‘필동해물’이 나온다. 70~80년대 봤음직한 파란색 간판 아래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다. 오후 6시만 넘겨도 이미 좁은 가게 안팎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가게 안이나 밖이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모두 소주 안주로 먹기 좋게 썰어 파란색 채반에 담아낸 해산물을 먹는다.

충무로역 대로 건너편 골목 막회와 과메기 잘하는 ‘영덕회식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점심에도 문을 열지만 저녁에 가야 이곳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막회를 시킬 땐 대(大)자를 시키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 중자와 고작 3000원 차이인데 양은 훨씬 푸짐하기 때문이다.

육식파를 위한 고깃집도 있다. 영덕회식당에서 진양상가를 가로질러 가면 충무로 먹자골목이 나온다. 곱창·돼지갈비·닭볶음탕·횟집·치킨가게 등 다양한 식당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이 중 입구에 있는 ‘호남식당’은 양념이 많아 물갈비로 부르는 돼지갈비가 유명하다. 배불리 먹었지만 집에 가기 서운할 때가 있다. 이때 가면 좋은 곳이 ‘필동분식’이다. 밤에 웬 분식집이냐 하겠지만 이곳은 연탄불에 구운 닭꼬치구이가 대표 메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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