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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패션 멋쟁이가 '사과깡패 여사'가 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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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로컬라이프(2) “농사지을수록 브랜드와 SNS는 필수죠”

'저 푸른 초원 위에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빡빡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에게, 답답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민에게, 퇴직 이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은퇴자에게 로컬라이프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자 마지막 보루다. 실제로 귀농·귀촌 인구는 해마다 늘고 있는데, 지난 한 해에만 5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농촌으로 유입됐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일이 '효리네 민박(jtbc)', '삼시세끼(tvN)' 등의 TV 프로그램처럼 유쾌하지만은 않을 터. TV가 아닌 현실에서 로컬라이프는 어떤 모습일까.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사과깡패' 농장을 찾으니 커다랗고 빨간 캐릭터가 반긴다. “이름 덕 좀 봤죠”라고 말하는 신정현 사과깡패(54세) 대표는 아직도 ‘농가 이름이 왜 깡패인가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경기도 포천 사과농장 '사과깡패' #3년차 농부가 살아가는 법

처음엔 ‘사과랑’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정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비슷한 이름이 많아 노출이 쉽지 않았다. '어차피 판매와 홍보는 온라인밖에 답이 없다'라고 생각했던 터라 기억하기 쉽고 특색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 2주간 고민하다 어릴 적 남동생만 3명을 돌보느라 동생에게 깡패 소리(?) 좀 들었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깡패를 최고라는 의미로 쓰더라고요. 맛으로나 농장 규모로나 사과에서는 최고가 돼야겠다 싶어서 이름을 사과깡패로 정했어요.”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사과깡패 농장을 찾으니 조형물이 반긴다 사진 서지명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사과깡패 농장을 찾으니 조형물이 반긴다 사진 서지명

“사과로 365일 소득 올려요”

3년 차 초보 농업인이 전하는 농가 생존전략은 나만의 브랜드다. 신 대표가 본격적인 농업인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 가장 큰 숙제는 ‘사과로 1년 내내 소득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부부 내외가 농업 전문가도 아니고, 전국의 수십 년 된 사과 농가를 사과 품질만으로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포천에만도 사과 농가가 150개에 달했다. 브랜드가 필요했다. 기억에 남는 사과깡패란 이름을 정하고, 눈에 띄는 캐릭터를 만들어 농장 곳곳에 조형물도 세웠다.

농장 내부는 체험농장을 염두에 두고 아기자기한 체험공간을 꾸몄다. 사과와 사과꽃 따기 체험뿐만 아니라 만들기 체험(사과식초, 사과와인, 사과파이, 사과잼)으로 프로그램을 꾸려 사계절 내내 체험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사과깡패 농장 내부에 위치함 체험장의 모습 사진 서지명

사과깡패 농장 내부에 위치함 체험장의 모습 사진 서지명

사과깡패 농장에서 사과가 재배되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지만 첫해부터 사과와 사과 가공품 판매를 할 수 있었던 건 이웃에 있는 다른 농가의 사과 물량을 받아 팔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과 농가를 경쟁상대가 아닌 협력업체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포천에서 나는 사과의 많은 물량이 사과깡패란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사과깡패가 키우고 있는 미니사과 사진 서지명

사과깡패가 키우고 있는 미니사과 사진 서지명

신정현 대표가 농장에서 키운 미니사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지명

신정현 대표가 농장에서 키운 미니사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지명

또 다른 전략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다. “나는 농업인이기 이전에 사업가다. 잘 팔아야 한다. 팔아서 이익을 남겨야 한다”라는 각오로 판매 전략을 세웠다. 사과뿐만 아니라 사과분말, 사과식초, 사과잼, 사과즙, 사과칩 등 사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걸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규모로 선물할 기회가 잦은 지역의 기업인들과의 네트워크를 위해 제조업을 하는 여성 CEO(최고경영인)가 모인 경기북부여성경제인협회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포천시 상공회의소 모임에도 들어갔다.

온라인에서는 가장 유력한 잠재적 구매군인 아이를 둔 엄마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방문해 이웃추가를 하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블로그 친구를 만들어 나갔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구매의지가 있는 2000명의 이웃이 생기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블로그 외에도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에도 매일같이 일상을 올리며 소통을 시작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발품과 손품을 팔았더니 어느 날부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과깡패 농장을 찾은 사람들이 체험공간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서지명

사과깡패 농장을 찾은 사람들이 체험공간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서지명

49세에 암 판정..암 치료 후 귀농

하이힐을 신고, 잘 정돈된 손톱을 유지하는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의 화려한 삶을 유지하고 싶었던 신 대표에게 귀농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삼성휴먼교육센터 파트장 출신인 신 대표가 포천에서 본격적으로 농업인의 삶을 살기로 한 건 남편 박성진(54) 씨의 영향이 크다. 동갑내기인 남편이 5년 전인 49세에 암 판정을 받았다. 편도선암 진단을 받았고, 이것이 악화돼 임파선까지 전이됐다. 수술 성공 확률이 30%에 불과했다.

항상 앞만 보면 달리다 큰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무얼 위해 이렇게 달려 왔나 삶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치료 과정에서 혀를 이식했는데 혀의 반을 잘라내야 했다. 다행히 암을 이겨내고 복직할 수 있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남편은 민원인들을 상대해야 했는데 짧아진 혀의 영향으로 어눌해진 발음 때문에 스트레스가 컸다. 남편은 공무원의 삶을 정리했고, 부부는 포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사진 왼쪽부터 남편 박성진 씨 신정현 씨 사진 서지명

사진 왼쪽부터 남편 박성진 씨 신정현 씨 사진 서지명

사실 쉬엄쉬엄 여유로운 로컬라이프를 꿈꿨지만 농사를 시작하고 보니 직장생활을 할 때 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일한다. 남편은 농사를 도맡아 하고 신 대표는 홍보, 마케팅, 판매, 체험행사 운영 등을 맡았다. 일이 끝이 없어 임의로 출퇴근 시간을 정했을 정도다.

‘성격상 가만있질 못하고 눈에 보이면 팔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신 대표의 목표는 사과깡패를 외국인들도 찾는 농촌관광 명소로 만드는 것이다. “어느 하늘,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몰라 구름 따라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 왔어요. 귀농의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힘을 빼기 보단 좀 더 뛰어보렵니다.”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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