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취향 │ 패션디자이너 최범석
“갈 때마다 늘 새로운 친구가 생겨요.”
남성복 ‘제너럴 아이디어’의 최범석(41·사진) 디자이너에게 여행의 재미를 물었더니 나온 답이었다. 낯선 장소에서의 우연한 인연.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는 로망이 왜 유독 그에게 쉬운지 물었다.
- 여행은 자주 다니나.
- “매년 두 차례 뉴욕 컬렉션에 가는 것 말고도 한두 번 멀리 떠난다. 올 4월엔 이탈리아·포르투갈·스페인에 갔다.”
- 여행 스타일은 어떤 편인가.
- “철저하게 현지인처럼 지내려고 한다. 파리나 런던처럼 관광 명소가 몰린 곳에서도 ‘그냥 사진으로 봐도 돼’ 하는 수준이다. 오히려 그런 대도시에선 우리로 치면 성북동이나 서래마을 같은 데 있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한다. 식당이나 바 같은 데 갈 때도 블로그나 여행 사이트 같은 건 보지 않는다. 거리를 구경하다가 좋은 차가 유독 많이 서 있거나 스타일 좋은 애들이 북적대는 곳을 찍어 들어간다. 취향이 좋은 애들이 가는 곳은 맛도 좋다.”
- 뉴욕에서도 그런가.
- “맞다. 갈 때마다 다른 동네에서 지낸다. 최근엔 뉴욕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브루클린의 작고 핫한 장소들을 탐방하는 데 빠져 있다. 그리스 음식점 ‘키키스’, 굴요리 전문식당 ‘메종 프리미에르’ 등은 분위기가 좋아서 혼자 가더라도 말동무가 생긴다.”
- 친구가 쉽게 생기는 비결은 뭔가.
- “일단 기죽지 말고 당당해라. 그리고 잘 입으면 된다. 보통 여행 가면 더 편한 옷만 찾는데 그럼 관광객으로서만 즐기다 오는 거다. 뉴요커처럼, 파리지앵처럼 잘 차려입고 있어야 저 사람 뭔가 재미있겠다, 말 좀 걸어봐야지 하는 거다. 언젠가 여행 마지막 날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잔을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식사를 하더라. 나폴리 스타일 양복을 빼입고 있어 한눈에 호기심이 생겼다. 합석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경험에서 묻어나는 인생의 조언을 듣는 기회였다.”
- 옷 때문에 생긴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나.
- “2016년 쿠바 여행. 컬렉션이 끝나고 쿠바를 가자고 마음먹었다. 뉴욕 JFK공항에 있는데 예사롭지 않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와서 쿠바에 가냐며 호텔은 너무 비싸니까 자기가 저렴한 카사(정부에서 허가를 낸 민박)을 잡아주겠다고 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뉴욕에서 활동하는 패션 포토그래퍼였는데, 쿠바 출신 아내가 있어 현지 사정에 밝았다. 원래 닷새만 머물려고 했던 쿠바에서 그 친구 덕분에 2주나 있었다. 헤어지면서 왜 공항에서 우리한테 말을 걸었냐니까 동양 남자가 멋내고 있는 모양새가 보기 좋았다고 하더라.”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