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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70시간 초과근무 시달려 투신한 서울시 7급 … 아버지 “살인적 업무 뜯어고쳐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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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숨진 서울시청 공무원의 아버지 김모씨가 아들의 업무수첩을 읽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달 숨진 서울시청 공무원의 아버지 김모씨가 아들의 업무수첩을 읽고 있다. [임선영 기자]

“다시는 우리 아들 같은 공무원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공직생활한 아버지 보며 공무원 꿈 #예산과 발령 뒤 거의 매일 자정 귀가 #“공직문화 안 바꾸면 비극 또 생길 것”

지난 1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아들 이야기를 꺼낸 김모(61)씨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그의 아들은 지난달 18일 과다한 업무량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시 예산과 김모(28) 주무관이다. 아들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씨는 아들을 보내지 못했다. “지금도 문을 열고 아들이 반갑게 들어올 것만 같다”는 김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김씨도 22년간 사법부 일반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아버지를 보며 공무원을 꿈꾸던 김 주무관은 2014년 서울시 7급 행정직에 합격했다. 당시 “장원급제한 것 같다”는 아버지의 칭찬을 받으며 서울시청에 들어간 김 주무관은 지난 1월 예산과로 옮기면서 부쩍 격무를 호소했다고 한다.

서울시의회에 제출된 ‘김 주무관의 2017년 초과근무 내역’을 확인해 본 결과 그는 8월 한 달에 26일간 총 170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 8월 마지막 주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새벽 2시를 넘겼다. 각종 사업 예산을 꼼꼼히 보고하려면 야근은 불가피했다.

“추모식 후에 박원순 시장과 류경기 부시장을 만나 ‘직원들이 이렇게 일하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더군요.”

김 주무관은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달 16일 토요일에도 야근하고 자정이 넘어 집에 왔다. 17일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했지만 휴대전화를 꺼두고 무단결근을 했다. 18일에도 출근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에게 아들은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팠지만 “무단결근은 안 된다. 일단 다녀 오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김 주무관이 향한 곳은 서울시청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이었다.

김씨는 “‘복지’를 강조하면서 정작 직원의 살인적 업무는 당연하게 여기는 공직사회 문화에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서마다 업무량에 비례해 직원 수는 적절한지, 한 사람이 너무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진 않은지 들여다보고 잘못된 부분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아들 같은 비극이 또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론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가 어렵게 아들 이야기를 다시 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시장이 부임한 2011년 이후 김 주무관을 포함해 7명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5년 12월 2명이 잇따라 투신한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직원 중심의 조직문화 혁신 방안’을 발표했으나 또 다른 투신 자살이 발생했다. 이에 박 시장은 “다양한 형태의 논의 틀을 만들고 새로운 직장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씨는 “박 시장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임선영·홍지유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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