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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수평적 당ㆍ청 관계라면 나오지 않았을 청와대 만찬 ‘박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저녁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당 지도부 및 시도당 위원장 초청 만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저녁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당 지도부 및 시도당 위원장 초청 만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및 시도당 위원장이 초청된 지난 13일 청와대 만찬 회동.
문재인 대통령의 환영사에 이어 바로 곁에 앉아있던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추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한 당 지역위원장들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비어 있는 사고 지역위원장 자리를) ‘공모’하지 않고 ‘직무대행체제’로 하기로 당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테이블에 배석했던 청와대 한 인사가 “고맙습니다”라고 호응을 했다. 좌중에서 웃음과 함께 박수가 이어졌다.

최근까지 민주당은 지역위원장이 청와대 비서관 등으로 차출되면서 공석이 된 곳을 ‘사고 지역위’로 판정하는 등 조직 정비를 해왔다. 이들 중에는 ^서울 강서을(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서울 관악을(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 ^경기 시흥갑(백원우 민정비서관) ^경기 성남 중원구(은수미 여성가족비서관) ^전북 익산을(한병도 정무비서관) ^충남 공주ㆍ부여ㆍ청양(박수현 대변인) 등 기존 지역위원장이 청와대로 입성하면서 사고 지역이 된 곳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공직에 나가게 되면 당적을 정리해야 하는 만큼 원칙적으로 지역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돼 있다. 하지만 여야는 관행적으로 청와대 입성 비서관 등의 지역위에 대해서는 직무대행체제로 운영해왔다. 기존 지역위원장이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사실상 영향력 행사를 그대로 할 수 있게 해준 관례였다.

하지만 추 대표가 사고 지역위의 대대적 정비를 추진하면서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다. 추 대표 측 핵심인사들 쪽에서는 “정비 대상이 30여곳이나 돼 관례대로 직무대행 체제로 가기보다 전반적으로 새 위원장을 공모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때문에 자기 지역위를 내놓을 위기에 처한 청와대 비서관 사이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겨냥해 추 대표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꽂으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고조돼왔다. 당ㆍ청 간 분란의 불씨로 비화할 조짐마저 엿보였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민주당이 사고 지역위를 기존 관행대로 직무대행제로 운영키로 하고 추 대표가 이 결정을 만찬 당일 공표한 것이다. 이 발언으로 회동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하지만 추 대표가 만찬에서 이 문제를 마치 선물을 베풀 듯 얘기하고 청와대 측 배석 인사가 “고맙습니다”라며 웃는 장면은 왠지 씁쓸하다. 추 대표 측이 “당 관행에 어긋난다”는 반발을 무릅쓰고 사고 지역위 정비작업을 주도할 때 내건 명분은 “직대 체제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면 공천 과정에서 공신력과 책임성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놓고 이제 기존 관행으로 돌아간다니 수긍이 잘 안 된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친문(친문재인) 세력을 등에 업고 탄생한 추 대표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처지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당 인사추천위 무산 ▷당 정당발전위 역할 축소 등 추 대표가 의욕적으로 내세운 개혁안들이 줄줄이 밀려난 데 이어 지역위 전열 정비도 결국 원점으로 회귀하고 만 상황을 두고 한 얘기다. “건전하고 수평적인 당ㆍ청 관계라면 청와대 만찬회동에서 나온 여당 대표의 발언과 박수 호응은 나오지 않았을 모습”(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이란 얘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비어있는 지역위를 직대 체제로 운영하는 관행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거운동 열심히 해서 대선에서 이기고 그 덕에 청와대에 입성한 이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정당 기득권 개혁 관점에서 보면 맞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직대 체제보다는 경선 공모를 하는 게 정당 민주주의 원칙에서나 정치신인 수혈 측면에서 맞지 않느냐는 얘기다. ‘100년 정당’을 지향하며 당 체질 개선에 나선 여당은 곱씹어 들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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