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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의 뒤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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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디지털담당

김영훈 디지털담당

쌍용차가 9월 국내 차 판매에서 3위를 꿰찼다. 창사(1954년) 이후 처음이다. ‘티볼리’가 효자 역할을 했다. 4위로 밀린 한국GM은 망신살이 뻗쳤다. 자책골도 넣었다. GM은 공장이 3개고, 쌍용은 1개다. GM공장은 노사 갈등으로 가동률이 뚝 떨어졌다.

쌍용차가 뒤집은 것은 순위만이 아니다. 쌍용차만큼 주인이 자주 바뀐 기업도 드물다. 쌍용그룹, 대우그룹을 거쳤고 채권단과 법원의 관리까지 받았다. 모두 일곱 번이다. 그사이 강박증도 생겼다. 2004년 경영권을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 때문이다. 기술 빼돌리기 의혹, 먹튀 논란…. 처음부터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게다가 하필 구원투수가 중국 자본이라니. 지금이야 놀랄 일이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자존심이 꽤 상했다.

중국이어서 더하긴 했으나 꼭 중국이어서만은 아니다. 실질적인 힘에선 자본 앞에 국경은 이미 의미 없다. 미국 햄버거 체인이 강남 한가운데 매장을 내는 시대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에선 외국 자본에 아직 꼬리표가 붙어 있다. 자본의 규모가 클수록 부정적이다. 고용 불안정, 기술 유출 같은 것들이다. 한국GM의 노사 갈등 뒤에도 한국 공장 폐쇄의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이 강박증을 뒤집은 것이 쌍용차의 3위 도약이다. 쌍용차의 모기업은 마힌드라다. 2011년 쌍용차의 일곱 번째 주인이 된 인도 회사다.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은 믿고 맡기는 스타일의 경영자다. 그룹 내 10개 사업 분야를 각각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위임해 경영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힌드라 인수 후에도 쌍용차는 이유일·최종식 사장이 바통을 이어가며 이끌었다. 한국 시장은 한국 사람이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이었다. 자체 연구개발을 북돋워 “우리는 우리 손으로 엔진을 만드는 회사”라는 쌍용차의 자부심도 지켜줬다.

노동자도 화답했다. 대규모 정리해고, 옥쇄 파업(2009년) 등으로 벼랑까지 가봤기에 절실했고 처절했다. “회사가 잘돼야 내가 잘된다는 얘기들을 하죠. 피상적으로. 그런데 우리는 몸으로 다 느꼈습니다. 과거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다릅니다.” 그런 절실함 앞에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사치였다.

부디 쌍용차 뒤집기가 이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외국 자본과 한국 기술의 성공적인 결합 모델로 더 나아갔으면 한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만 집중해서도 얼마든지 명가가 될 수 있다. 랜드로버가 그렇다. ‘듣보잡’ 취급을 받을 각오로 미국 시장에도 가야 한다. 자동차 회사가 한 단계 성장하는 가장 빠른 길은 미국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미국 시장은 모기업 마힌드라도 넘지 못했던 벽이다. 쌍용차의 다음 뒤집기를 응원한다.

김영훈 디지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