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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시각각

586 ‘꼰대’들, 이제는 물러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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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그저께인 1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은 진성준·한병도·정태호·은수미 등 청와대에 재직 중인 586 비서(행정)관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그들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지역위원장으로 있던 12개 지역구를 그들의 측근들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토록 해 사실상 위원장직을 유지시켜준 것이다.

청와대 86 비서관들, 지역위원장도 독차지 #30·40대 후배들에게 길 열어주고 용퇴하길

정권 초기 청와대를 주름잡는 실세 비서관들이 그 좋다는 여당 지역위원장 자리까지 보장받았으니 양손에 떡을 거머쥔 형국이다. 차기 총선 공천 1순위인 지역위원장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도 큰 힘이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측근들을 시·도의원 후보로 밀 수 있다. 그들이 당선되면 2020년 총선에서 그들의 도움 아래 국회에 금의환향할 공산이 커진다. 민주당은 “과거 정권도 다 이렇게 했다”는 ‘관례’를 내세운다. 하지만 해당 지역구에서 도전 기회를 노려 오던 신인들은 “86들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지금 여권은 누가 뭐래도 ‘86 세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80년대 메이저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의장이나 부의장을 지낸 우상호·이인영 같은 ‘성골’, 전대협에서 간부를 지낸 ‘진골’, 전대협 간부는 아니지만 당시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6두품’들이 지배한다. 청와대에도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586 출신 비서관들이 즐비하다.

86들은 2000년 DJ(김대중)의 ‘새 피 수혈’ 결단으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친노·친문계가 아니면서도 이들과 제휴해 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 줄기차게 주류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운동권 시절 익힌 동물적인 권력 감각 덕에 3~4선 고지에 오른 인물들도 흔하다. 내년 지방선거도 86들의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 86들 사이에선 ‘이인영 서울시장, 우상호 대표’ 같은 나눠먹기식 밀어주기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86들이 20년 가까운 권세를 누리면서 민주당은 젊은 의원을 찾아보기 힘든 ‘꼰대당’으로 전락했다. 2000년 총선에서 당시 30대였던 86들 수십 명이 무더기로 국회에 들어온 이래 민주당에 30대 신인들의 단체 입성은 전무하다. 지금 20대 국회에서 30대 의원은 단 2명이다. 자유한국당(신보라)과 국민의당(김수민)에 1명씩이다. 민주당엔 전무하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 평균연령이 55.2세에 달한다. 국민 평균연령(41세)보다 14세나 많다.

86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민주화 운동과 정당정치인 경력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 현 정권이 북한과의 대화에 매달리고, 탈원전같이 국민의 일반 인식과 괴리가 있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86들의 이런 제한된 경험 탓이 크다.

그러나 프랑스 같으면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70년대산 40대 민주당 정치인들은 86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 당 조직의 80%가 86들에게 장악된 데다 “짱돌 한 번 던져본 경험도 없는 것들이 누구에게 덤벼” 같은 비아냥에 찍소리도 못 내는 것이다. 86들이 몸 바쳐 성취한 민주화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금배지를 3~4번이나 달고 요직도 여럿 누려본 사람들이 ‘유공자’ 지위만으로 공천을 독점하고, 후배 정치인들의 부상을 견제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자신과 친분이 없던 햇병아리 30대 신인들을 동교동 측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천해 당에 활기를 불어넣은 DJ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음 선거에선 3선 이상 86들을 물갈이하고,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은 30~40대 신인들을 대거 공천하라. 그래야 민주당이 ‘진보 꼰대’ 오명을 벗고, 실업과 저출산 같은 젊은이들의 고통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해소하는 정당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