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올라도 세계 증시 들썩 … 코스피 사상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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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돈을 죌 신호를 보내는데도 국내 증시는 축포를 터뜨리고 있다.

경기 호전돼 경제 기초체력 탄탄 #달러 약세, 기업 실적 개선도 한몫 #미국 다우지수 잇단 신기록 경신 #북한 핵 문제 등 정치 리스크 여전 #“국내 증시 IT주 비중 커 조정 가능성”

11일 코스피는 새 기록을 쓰며 2500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날보다 24.35포인트(1%) 오른 2458.16으로 마감했다. 전고점(종가 기준)은 지난 7월 24일의 2451.53이었다. 이날 기록은 외국인 투자자가 만들다시피 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4500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전날과 합하면 이틀에만 1조2700억원어치를 사들였는데, 지난 한 달 팔아치운 금액(1조5900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미국이 연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팽배한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의 폭발적인 매수세는 이례적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그렇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풀었다가 2014년 본격적으로 거둬들였다. 그해 코스피는 한 해 동안 4.8% 하락(2011.34→1915.59)했다. 유동성 긴축으로 국내 증시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란 불안이 반영된 결과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제는 과거와는 여건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펀더멘털, 세계 경제의 기초 체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45개국이 전부 경제 성장을 이루는 해가 될 것”이라며 “이는 지난 50년간 극히 드문 경우”라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 증시도 유례없는 호황이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전날보다 69.61포인트(0.3%) 오른 2만2830.68로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적 발표 시즌을 앞두고 실적 호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데다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면서 기업 실적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듀브라브코 라코스부자스 JP모건 미국 주식 책임자는 “거시 경제 환경이 기업의 실적 성장에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며 “법인세 인하 폭이 크지 않더라도 S&P500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은 10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경제지표 호전과 달러 약세도 미국 증시를 밀어올리는 배경이다. 지난달 미국 제조업황은 2004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에 따르면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0.8을 기록해 13년 만에 최고를 나타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동안 증시를 떠받든 주춧돌이 유동성이었다면 이제는 기업 실적이 떠받들고 있다. 특히 7월부터 지난달까지 조정받았던 전기전자(IT) 업종이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다시 힘을 받은 영향이 컸다.

김재홍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미국의 테이퍼링(유동성 축소) 때는 펀더멘털이 튼튼하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에 증시가 조정을 받았지만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이 예상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그 자체보다는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이어질지 혹은 4분기 실적이 얼마나 뒷받침될지가 더욱 중요한 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시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여건은 녹록지 않다. 소비와 투자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회복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 위험과 미국 보호무역주의 조짐도 국내 경제에 부담이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선진국의 경기와 기업 실적이 급격하게 개선되면서 신흥국 투자 매력은 상대적으로 줄었다”며 “게다가 미국 보호무역주의는 신흥국 투자 심리에 부정적이라, 외국인 매수세는 단기에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 IT 비중이 너무 커 착시효과가 나타난다는 우려도 있다. 시가총액 기준 IT는 전체 증시의 33%, 그중에서 반도체는 25%를 차지한다.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몸집에 비해 증시에선 지나친 영향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에서 IT 비중이 너무 높다보니 경제 전체는 크게 좋지 않은데도 증시만 불붙은 것처럼 뜨거워 보인다”며 “미국과 유럽의 본격적인 통화 긴축이 다가오는 가운데 IT를 이어받을 업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음달께 증시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현영·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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