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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사망 일병, 총 쏘는 사격장 옆 지나가다 유탄 맞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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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대 청춘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튕겨난 도비탄(跳飛彈)이 아니라 표적을 빗나간 유탄(流彈)이었다. 사고 발생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도비탄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한다던 군 당국은 12일 만에 말을 바꿨다.

6사단 사격장 사고 조사결과 발표 #군 “도비탄 추정” 12일 만에 말 바꿔 #사격 중 병력이동, 통제 소홀 ‘인재’ #사고지점 주변 숲엔 70여 발 탄흔 #중대장 등 3명 영장 신청하기로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달 26일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6사단 소속 이모(21) 일병이 근처 사격장으로부터 날아온 유탄에 맞았다고 9일 밝혔다. 이 일병은 당시 오후 4시10분쯤 강원도 철원군 금학산에서 진지 공사를 마친 뒤 소대원들과 함께 부대로 걸어 돌아가던 중 변을 당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초 육군은 사고 부대의 부소대장 보고만 믿고 도비탄 때문에 일어난 사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일병 가족의 강력한 진상규명 요구가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수사를 지시했다. 조사본부가 이 일병 시신에서 빼낸 탄두에선 다른 물체에 충돌한 흔적이나 이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격장과 전술도로 사이 무성한 숲이 있었기 때문에 조준사격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특별수사팀장인 이태명 조사본부 수사단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 수사한 결과 유탄”이라고 밝혔다. 조사본부는 누구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인지도 분석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마찰로 탄두의 강선(총열 안쪽의 나선형 홈) 흔이 지워져 특정하기가 곤란하다”고 전했다.

이 일병의 죽음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는 게 조사본부의 결론이다. 이 단장은 “(소속 부대, 사격훈련 부대, 사격장을 관리하는 부대 등) 어느 한 부대라도 안전에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고 말했다. 인재(人災)란 의미다.

사고 지점은 사격장 뒤편 전술도로에 있다. 총을 쏘는 사로(射路)에서 340m가량 떨어졌다. 사격훈련 부대는 사격 중 통행을 막는다며 전술도로 양쪽 입구에 경계병 2명씩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 경계병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시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작업을 마친 이 일병 소대가 지나갈 때 “망설이다가 그냥 보냈다”고 한다. 이 일병의 소대를 인솔한 소대장과 부소대장은 사격장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지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평소 사격 중에도 전술도로를 자주 이용했다는 진술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사본부가 주변의 나무들을 살펴보니 70개가 넘는 총탄 흔적이 발견됐다. 유탄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곳이지만 사격장을 관리하는 부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조사본부는 사격훈련 부대의 최모 중대장(대위)과 이 일병 소속 소대의 박모 소대장(소위), 김모 부소대장(중사) 등 3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육군은 6사단 사단장(소장)과 참모장(대령), 교훈참모(중령) 등 16명에 대해 징계조치할 계획이다. 숨진 이 일병은 상병으로 추서됐고, 순직을 인정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툭하면 말 바꾸는 군 당국=그동안 군 당국은 인명 사고 후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2015년 5월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3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육군은 처음엔 6개 사로에서만 사격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개 사로였다고 수정했다. 사고 당시 조교 6명이 사격훈련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통제가 미흡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조교 수에 맞춰 사격 사로 숫자를 줄여 발표했던 것이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사고를 수습한다며 섣부르게 원인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군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거나 축소한다는 비난을 받는다”며 “출산율 감소로 군 입대할 자원이 줄고 있는데 후진국형 안전사고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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