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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지방 법정에 나타난 공지영 작가 '부글부글' 왜?

중앙일보

입력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 3호 법정.
방청석 맨 뒷자리에 대중에게 낯익은 여성 작가가 앉아 있었다.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등으로 유명한 공지영(54) 작가였다. 그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운영자인 40대 목사 A씨(여)와 40대 전 신부 B씨의 1심 재판을 보기 위해 특별히 전주에 왔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전주지법서 열린 재판 방청 #사기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남녀 성직자 #허위 경력으로 장애인 복지시설 설립해 #수억원 기부금 가로채…불법 봉침 시술도 #女목사 "아이 5명 입양해 홀로 키운다" 홍보 #알고 보니 2명은 수년간 어린이집에 맡기고 #지적장애인 1명은 입양 두 달 만에 파양 조치 #공 작가 "검찰 축소 수사 의혹. 재조사 필요"

집필과 강연 활동으로 바쁜 '스타 작가'는 왜 지방 법정에 나타났을까.
전주지검은 허위 경력증명서를 바탕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설립해 기부금 및 후원금 명목으로 3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로 A씨와 B씨를 지난 6월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개신교 목사인 A씨는 정부가 발급한 의료인 면허 없이 봉침(벌침)을 시술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장애인 시설 신축 공사와 사단법인 변경 명목으로 후원금 1억6500여만원을 가로채고,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고 1억4600만원을 모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사회복지시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것처럼 허위 경력증명서를 꾸며 전주시로부터 장애인 복지시설 신고증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지난 2008년 전주에 문을 연 장애인 복지시설엔 현재 장애인 1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A씨와 함께 기소된 전직 천주교 사제인 B씨는 천주교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2015년 7월 면직됐다고 한다.
공 작가는 당시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B씨가 천주교 교구에서 면직당했으니 후원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일 때문에 공 작가는 B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하지만 2년 만인 지난 7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날 법정에 선 A씨는 전직 신부 B씨의 면직 사유인 성추문에 등장하는 당사자라고 천주교 측이 전했다. A씨는 전주에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20년 넘게 장애인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 덕분에 '한국의 마더 테레사'로 불렸다. B씨는 신부 직을 잃은 뒤 A씨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의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A씨는 "나는 미혼모이며 아이 5명을 입양해 홀로 키우고 있다"고 주변에 홍보하며 후원금을 모금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A씨가 입양한 아이 중 2명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외부의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수년간 키워졌다. 또 A씨가 2013년 입양한 20대 중반의 1급 지적장애인은 두 달 만에 파양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A씨는 그동안 "무보수로 봉사한다"고 주장했으나 평화주민사랑방 등 시민단체들은 "최근 몇 년 사이 A씨가 수억원대 부동산과 건물 등을 사들였다"며 자금 출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자칭 '봉침 전문가'인 A씨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전직 국회의원 등 유명 정치인을 비롯해 종교인·공무원·장애인 등에게 봉침을 시술하고 일부 남성에게는 성기에 봉침을 놓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A씨 등은 "평생 봉사와 희생을 해왔고 좋은 곳에 쓰기 위해 후원을 받아 실제로 좋은 곳에 썼다"며 모든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A씨가 입양한 두 아이를 돌본 전 어린이집 원장 C씨(여)에 대한 변호인의 증인 신문이 40분가량 이뤄졌다. A씨 측 변론은 공안검사 출신인 50대 D변호사가 맡아 눈길을 끌었다.

D변호사는 피고인 A씨가 아이들을 학대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증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증인에게 "아이들이 어린이집 원장 부부를 '엄마' '아빠'라 부르는 건 이례적이지 않나" "입양된 아이가 (피고인) A씨를 형식적으로 엄마라고 불렀다고 진술한 근거는 뭔가" 등을 물었다.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검찰청 전경. [중앙포토]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검찰청 전경. [중앙포토]

'입양된 아이 K가 피고인 A씨 집에 다녀온 뒤 신체에 학대를 당한 흔적이나 정황이 있었느냐'는 D변호사의 질문에 증인 C씨는 "벌침을 맞고 온 적도 있고 속눈썹이 잘려온 경우도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에 D변호사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일입니다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눈썹이 짧으면 좀 진하게 나오게 하기 위해 잘라주는 경우도 있다"며 피고인을 옹호했다. 또 "입양된 또 다른 아이의 돌잔치 때 (피고인) A씨는 음식 준비는 못했어도 (증인에게) 100만원을 송금하는 등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며 A씨를 변호했다.

반면 증인으로 나선 전 어린이집 원장 C씨는 "(피고인) A씨가 입양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D변호사와 팽팽히 맞섰다.

"입양된 아이가 한 번씩 집에 가면 울면서 안 가려고 하는 등 굉장히 힘들어 했다" "(피고인) A씨 집에 가는 동안 아이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A씨는 항상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등 재판을 받는 피고인 A씨가 '보호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맥락의 증언을 쏟아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주요 증거 기록 일부가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의 실수로 증거 능력을 상실한 일도 벌어졌다. 증인 신문을 마친 D변호사는 재판부에 이날 증인으로 나온 전 어린이집 원장 C씨의 검찰 진술 조서와 피고인 A씨에 대한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 일부에 "검사 서명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심리를 맡은 전주지법 형사6단독 정윤현 판사는 해당 자료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공지영 작가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공판)검사는 뭐 하시는 분인데 아무것도 안 하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변호사가 (증인에게) 모욕적인 질문을 해도 막지 못하는 검사를 보면서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판사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소설 『부활』에서 판사들은 관료적인 일 처리와 게으름 때문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데 공 작가가 이날 법정에서 본 공판검사를 소설 『부활』 속 판사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공 작가는 "아이들 (학대) 얘기가 나오니까 너무 분노해 (재판) 중간에 몇 번 일어나 법정 소란을 피울까 하다가 참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이번 사건을 축소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공 작가는 "정권이 바뀌기 직전 높으신 분의 입김이 (검찰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며 "단적인 예로 그간 드러난 봉침 피해자가 많은데 검찰이 문제 삼은 사례는 단 한 건이다. 추측이지만 검찰이 압수수색할 때 (피고인 A씨) 컴퓨터에 있는 명단과 폐쇄회로TV(CCTV)가 있을 텐데 왜 유독 봉침 사례만 특별히 축소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의 재조사가 필요하다"면서도 외압의 근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 작가는 이 사건에 미온적인 전북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언론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공 작가는 "(이 사건에 대해) 전북도와 전주시에 진정을 제기하고 언론과 수차례 접촉했는데 전혀 (개선이) 안 됐다"고 주장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7일 오후 3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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