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굿모닝 내셔널]우리가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는 이유…국내 유일 장애인 댄스스포츠 실업팀 훈련장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울산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장애인과 장애인 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조를 이룬다. (왼쪽부터) 이영호·박영선·이익희·장혜정 선수.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장애인과 장애인 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조를 이룬다. (왼쪽부터) 이영호·박영선·이익희·장혜정 선수. 최은경 기자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딴~’

울산광역시 울주군 댄스스포츠 실업팀 #매년 13여 개 국내외 대회서 기량 뽐내 #장애·비장애 선수 4명 매일 8시간 훈련 #‘제3의 선수’인 휠체어와 호흡 중요 #이영호,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장혜정 “하반신 못 움직여도 자유로워”

9월 28일 오전 10시 울산종합운동장 장애인 댄스스포츠 훈련장. 경쾌한 4분의 4박자 퀵스텝 음악에 맞춰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 소속인 장혜정(42)·이영호(39) 선수가 휠체어에 몸을 싣고 날렵하게 댄스장을 누비고 있었다.

장혜정·이영호 선수가 퀵스텝 음악에 맞춰 연습하고 있다.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근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최은경 기자

장혜정·이영호 선수가 퀵스텝 음악에 맞춰 연습하고 있다.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근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최은경 기자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장애인과 장애인,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조를 이뤄 실력을 겨룬다. 울주군청팀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 댄스스포츠 실업팀이다. 장애인 댄스스포츠가 비장애인 종목과 다른 점은 휠체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장애인 선수뿐 아니라 비장애인 선수도 휠체어에 익숙해져야 해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장르는 라틴(삼바·차차차·룸바·파소도블레·자이브), 모던(왈츠·탱고·빈왈츠·폭스트롯·퀵스텝)으로 나뉜다.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이 지난 달 15일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댄스스포츠 종목에서 휠체어 5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이 지난 달 15일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댄스스포츠 종목에서 휠체어 5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몇 곡의 연습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을 만났다. 유심히 보니 선수들의 다리가 끈으로 휠체어에 고정돼 있었다. 댄스스포츠용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와 다르다. 몸에 꼭 맞고 다리를 묶는 끈이 있다.
장 선수는 “선수마다 장애 상태가 달라 맞춤으로 제작한다”며 “신발로 보면 댄스 슈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쁜 숨을 몰아쉬며 “발레처럼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도 근력을 최대한 이용하기 때문에 몹시 힘든 운동”이라고 말했다.

오래전 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두 사람은 새 동작을 익힐 때마다 필요한 근육을 어떻게 쓰는지 하나씩 새롭게 배워야 한다. 선수들의 장애 부위와 정도가 모두 달라 지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댄스스포츠 선수 출신의 서상철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 감독은 비장애인이지만 휠체어를 타며 선수들과 감을 공유한다.

2014년 2월에 창단된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은 많은 국내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최은경 기자

2014년 2월에 창단된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은 많은 국내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최은경 기자

울주군청 팀은 두 선수와 비장애인 이익희(25)·박영선(26) 선수까지 모두 4명이다. 이들이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2014년 2월 창단돼 2014 IPC 휠체어 댄스스포츠 아시아태평양컵,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휠체어 댄스스포츠, 2015 뉴 타이페이 시티컵 국제휠체어 댄스스포츠 , 2017 러시아 휠체어 댄스스포츠 월드컵, 2017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댄스스포츠 같은 국내외 대회에서 수위권 성적을 거두며 세계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서 감독은 “실업팀이 된 것은 3년 전이지만 이영호 선수는 10년 넘게 나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며 팀워크를 강점으로 꼽았다. 이들은 국가대표로 1년에 2~3개의 국제대회와 10여 개 국내 대회에 출전한다.

장혜정 선수는 춤 출 때 장애를 잊을 만큼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

장혜정 선수는 춤 출 때 장애를 잊을 만큼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

장 선수는 2011년부터 정식 장애인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했다. 이전에는 13년 동안 장애인 인권 상담사로 일했다. 일하던 스포츠센터에서 6개월 정도 댄스스포츠 선수로 뛰면서 이 종목에 발을 들였다. 장 선수는 “어릴 때 사고로 장애를 얻고도 학업·결혼·출산을 다 했는데 댄스스포츠를 시작할 때 정말 많이 울었다”고 토로했다. 선수 등급심사를 받을 때 ‘앞으로 나란히’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살면서 그런 자세를 취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본인도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장애를 직면한 거죠. 오롯이 제 몸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어요.”

춤이 아닌 장애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힘겨웠다. “국제대회에서 사지마비 선수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춤 추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저도 관객들에게 그런 감동을 주고 싶어요.”
이후로 장 선수는 표정과 섬세한 몸짓에 더 신경 쓴다. 안 되던 동작을 해냈을 때 벅찬 기쁨 때문에 울면서도 연습을 계속한다고. 처음에는 힘든 운동을 왜 하느냐던 가족도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춤 출 때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자유로움을 느껴요. 신경은 죽었지만 몸을 움직여 근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권투 선수로 활동하던 이영호 선수는 14년 전 사고를 당한 뒤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다. 최은경 기자

권투 선수로 활동하던 이영호 선수는 14년 전 사고를 당한 뒤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다. 최은경 기자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이 선수는 14년 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역도 중등부 한국 신기록 보유자이자 프로 권투 선수였다. 댄스스포츠는 전혀 몰랐다. 병원에서 재활을 하던 중 병원장의 추천으로 한국 최초 휠체어 무용수로 유명한 김용우 선수를 만나 이 길에 들어섰다. 이 선수는 “댄스스포츠를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직접 휠체어 댄스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입문 이유를 밝혔다.

초기에는 재활에 도움이 될까 해서 취미로 했다. 그러다 김용우 선수가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진지하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 선수의 말이다. “박자를 타는 손맛이라고 할까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실업팀 선수가 되고나서 타이틀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지만 춤 추는 것이 좋아요.”

장애인 댄스스포츠 종목은 장애인·비장애인 선수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휠체어를 사용해 비장애인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박 선수는 “발·무릎을 자주 다치는데다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장애인 선수들을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 종목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이 매일 8시간씩 훈련하는 울산종합운동장 체육관. 최은경 기자

울주군청 장애인 댄스스포츠팀이 매일 8시간씩 훈련하는 울산종합운동장 체육관. 최은경 기자

장혜정·이익희, 이영호·박영선 조는 오는 21일 열리는 벨기에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각자 1위와 결승 진출을 목표로 주말도 없이 하루 8시간씩 맹훈련하고 있다. 국제대회에 나가 한국의 장애인 댄스스포츠 실력을 알리는 것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보람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국제무대에서도 장애인 댄스스포츠의 길은 좁다.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내년에 열리는 자카르타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정식 종목에서 빠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지원이 부족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것 역시 걱정거리다. 부산이 집인 이 선수는 실업팀 창단 전에 받았던 우수선수 지원금(월50만원)을 거의 매일 부산과 울산을 오가면서 교통비로 소진했다. 몇 년 전에는 경제적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춤이 좋아 그러지 못했다고. 이 선수는 은퇴 뒤 후배 양성, 체육 정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 선수는 장애인 인권 상담을 한 경험으로 은퇴 뒤 장애인 스포츠 심리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장애가 있는 몸으로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심리 장애가 온다”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익희·장혜정 선수가 왈츠 음악에 맞춰 연습하고 있다. 두 선수뿐 아니라 '제3의 선수' 휠체어와 호흡도 중요하다. 최은경 기자

이익희·장혜정 선수가 왈츠 음악에 맞춰 연습하고 있다. 두 선수뿐 아니라 '제3의 선수' 휠체어와 호흡도 중요하다. 최은경 기자

선수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휠체어를 이리저리 굴리며 스텝을 밟는 그들의 자유로움에 댄스장이 좁아보였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관련기사

굿모닝 내셔널 더보기

굿모닝 내셔널

굿모닝 내셔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