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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대신 정치구호만 요란, 1960년대 격동의 현장이었던 남산의 그곳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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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22면

[정연석의 Back to the Seoul] 남산야외음악당(1963~1980)

서울의 내사산 중 한 곳인 남산은 조선 시대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신 목멱산으로 불리며 중요하게 여겨졌다. 산의 정상부에는 봄‧가을에 초제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다. 1925년 일제는 이 국사당을 철거하고 조선 신궁을 세운다. 지금 백범 김구 선생과 초대정부의 부통령을 지내신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는 백범 광장은 이 조선 신궁이 있던 자리의 일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정부는 이곳에 국회의사당을 짓고자 했다. 현상설계를 통해 일본에 유학 중이던 김수근의 안이 당선되었으나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그 자리에 야외음악당을 만들었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콘크리트 셀 구조인 야외음악당은 건축가 안병익의 작품이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음악당은 정작 공연보다는 정치 집회나 종교 행사에 더 많이 사용됐다. 67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윤보선의 선거 유세에는 무려 25만의 인파가 몰렸다. 69년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날에는 대형 TV를 설치하고 밤늦도록 달 착륙 광경을 중계했다. 73년 부활절 예배 때는 박형규 목사가 ‘민주주의 부활’을 외쳤다가 내란예비음모로 구속되기도 했다. 60년대 후반 이후 정작 음악회는 일 년에 몇 번 열리지도 않았다.

노후화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야외음악당은 차량 소음으로 음악회를 열기가 힘들고 맞은편 국립중앙도서관(구 어린이회관)과 남산도서관의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명분으로 80년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정연석 : 건축가. 일러스트레이터.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스스로 도시 유목민을 자처한다. 드로잉으로 기록한 도시 이야기 『기억이 머무는 풍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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