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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줄거리 틀을 벗다…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중앙일보

입력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뒤에 보이는 가면 쓴 사람들이 관객이다. [사진 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뒤에 보이는 가면 쓴 사람들이 관객이다. [사진 서울예술단]

21일 서울 청계천 CKL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서울예술단의 신작 가무극 ‘꾿빠이, 이상’은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이다. 서울예술단의 홍보자료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형식”을 내세우며 ‘실험’과 ‘혁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꾿빠이, 이상’이 보여주는 실험 정신의 본질이 아니다. 진짜 놀라운 혁신은 원작 소설의 서사 자체를 허물어버린 데 있다.
‘꾿빠이 이상’은 김연수의 소설 『꾿빠이, 이상』을 극작가 오세혁이 가무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다. 이상의 주변 인물들, 이를테면 아내 변동림과 여동생 옥희, 연인 금홍, 동시대 예술가 박태원ㆍ김유정ㆍ길진섭ㆍ조우식ㆍ김기림 등의 증언을 토대로 이상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는 ‘이상의 얼굴’은 모호한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세상의 폭력을 꼬집어내는 장치다. 이상의 단편소설 ‘실화’의 첫 구절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는 ‘꾿빠이, 이상’의 주제를 함축한 대사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가무극 '꾿빠이, 이상'의 원작자 김연수(왼쪽)과 각색자 오세혁. [사진 서울예술단]

가무극 '꾿빠이, 이상'의 원작자 김연수(왼쪽)과 각색자 오세혁. [사진 서울예술단]

공연 전 원작자 김연수는 “스토리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형식이 만개하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확실하게 이뤄졌다. 이야기 줄거리는 하나도 따라가지 않으면서 작품의 주제는 공유한다. 연출가 오루피나의 표현대로라면 “음악은 대사처럼, 대사는 안무처럼, 안무는 음악처럼 느껴지는 공연”으로 버무려져 원작의 감흥을 원작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구현했다. ‘꾿빠이, 이상’은 『꾿빠이, 이상』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면서, 묘하게 같은 작품이 됐다. 무대 여신동, 안무 예효승, 음악 김성수 등이 펼쳐 보이는 세계 역시 ‘모호한’ 이상의 작품 세계와 결을 같이 한다.
30일까지 예정된 공연은 개막과 동시에 전석 매진돼 27, 29일 오후 5시 공연이 추가됐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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