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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때 국정원, 홍준표·박지원·조국 비방 … 여야 안 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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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명박(MB)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과 교수들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 활동을 해 왔다고 국정원 개혁위가 25일 밝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사회 각계 인사에 대한 심리전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위, 21명 대상 심리전 공개 #노무현 서거 뒤 아고라에 500건 글 #홍준표엔 “집안 흉봐 뜨려는 구태” #4대강 비판 조국엔 “양의 탈 쓴 늑대” #청와대 개입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MB 직접 입장 표명하는 방안 검토

개혁위에 따르면 주요 비판 대상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지원 국민의당·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당시 야당 정치인은 물론 여당이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상수 창원시장 등도 포함됐다. 또 진보색이 짙었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도 비판 대상이었다.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저명인사가 ‘표적’이 됐다. 개혁위가 이날 공개한 대상은 모두 21명이다.

심리전단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정부 비판이 늘자 ‘盧 자살 관련 좌파 제압 논리 개발계획’ ‘자살 악용 비판 사이버심리전 전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친노·야당의 정략적 기도는 정치 재기를 노린 이중적·기회주의적 행태로 몰 것’ 등의 대응 논리를 만들었고 심리전단은 다음(Daum) ‘아고라’ 토론방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 300여 건, 댓글 200여 건을 게재했다.

2011년엔 ‘4대 강 사업장 폐콘크리트 매립’을 주장한 조국(당시 서울대 교수) 수석이 타깃이 됐다. 심리전단은 그를 ‘정치교수의 선동’으로 규정하고 심리전을 전개했다. 그 후 “조국 교수는 양의 탈을 쓰고 체제 변혁을 노력하는 대한민국 늑대다” “천안함, 연평도 북 도발을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글들이 트위터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또 2010년 당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폄훼하자 심리전단은 ‘박지원 망동 강력 규탄 사이버심리전 전개’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그의 ‘대북송금, 뇌물수수 전력 폭로기사’ 등을 다음 ‘아고라’에 올렸다.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에 대해선 ‘종북행각 규탄 전략 심리전’을 실행했고, 곽노현 전 교육감을 상대로는 ‘곽노현·전교조 부도덕성 공략 심리전’이 이뤄졌다.

정동영·천정배 국민의당 의원, 김만복 전 국정원장, 작가 유시민씨,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도 공격 대상이었다.

심리전단은 당시 여당 인사들에 대해서도 비방전을 폈다. 2011년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 “아군이 전멸하면 홀로 정치하려는가? 집안 흉봐서 뜨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보수논객인 이상돈(현 국민의당 의원) 중앙대 교수가 MB 정부를 비판하자 국정원은 그를 좌파 교수로 규정하고 ‘카멜레온 정치교수 자진 사퇴하라’며 퇴출 여론을 조성했다.

국정원은 심리전과 동시에 ‘오프라인’ 활동도 병행했다. 보수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워치’(대표 변희재)에 대해선 창간 재원을 마련해 주고 국정원 정보관들을 통해 정기구독과 광고 지원을 돕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개혁위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홍보·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동향정보 수집을 지시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댓글 등 비방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는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혁위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정치 관여 및 업무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강효상 한국당 대변인은 “야권 분열을 노리는 이간질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와 관련,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입장 표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시기와 방법 등은 이견이 있지만 ‘입장 표명을 한다’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훈·유성운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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