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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대북 인도적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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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 <2017년 9월 15일 34면>
“전술핵 반대” “대북 인도적 지원” … 왜 이렇게 서두르나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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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당국자가 어제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라 8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21일로 예정된 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 아동과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영양강화 사업과 백신 및 필수의약품,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을 위해서다. 북한 동포에 대한 지원은 800만 달러가 아닌 그 10배, 100배라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지 11일 만이고, 이를 제재하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된 지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리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지만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국민 정서에 부합하느냐부터 문제다. 북한 6차 핵실험은 남북한 군사적 균형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게임 체인저’다. 그만큼 국민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또 우리를 “동족의 껍데기를 쓴 미국의 개”라고 비난했다. 이런 판국에 대북 지원이라니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비판까지 고개를 드는 것이다.

또 국제적인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멕시코에 이어 페루가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중국도 이번 제재결의안 통과 때 ‘규탄’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 제재를 ‘작은 걸음’이라 하고, 미 국무부가 ‘천장’이 아닌 ‘바닥’이라고 말한 것은 추가 독자 제재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같은 시점에서 대북 지원은 자칫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당장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통일부의 거듭되는 엇박자 행보와 조급증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통일부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뜬금없이 남북 군사회담과 개성공단 재개 검토 등을 발표해 ‘극한 압박’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여 왔다. 여기에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술핵의 재배치는 냉정하게 계산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미국에서 매케인 상원의원 등 다양한 인사들이 "전술핵 재배치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최고 결정권자인 문 대통령은 전략적 모호성을 남겨두어야지 왜 지나치게 서둘러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는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과 통일부의 급변침은 일부 진보 진영의 “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의식한 결과일 수 있다. 아니면 북한에 먼저 화해 메시지를 던져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지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과 통일부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지 말고 넓게 보고 신중히 나아갔으면 한다.

한겨레 <2017년 9월 15일 23면>
대북 인도적 지원, 남북 경색 푸는 계기 되기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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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산하 기구의 요청에 따라 아동·임산부 보건사업 등에 800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방안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기 전 2015년 12월 80만 달러를 보낸 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부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논의를 거쳐 이 방안을 확정하면 21개월 만에 대북 인도적 지원이 재개되는 것이자 문재인 정부 첫 대북 지원이 된다. 정부의 이번 지원이 최악의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데 청신호가 되기를 바란다.

남북 관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악화하기 시작하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미약하나마 개선 조짐이 보이더니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남북 화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로 악화했다. 군사정권 시절 말고 남북 관계가 이렇게 꽉 막힌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그러나 이런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남북 어느 쪽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불러내려면 제재·압박 위주의 강경책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2006년 이후 북한 미사일·핵 개발에 대해 무려 10차례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북한에 실질적 타격을 주지 못했고 북한 정권을 돌려세우지도 못했다. 지난 11일 통과한 안보리 결의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제재·압박과 함께 대화의 필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이번 지원 방안은 이런 원칙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남북 관계는 모든 채널이 끊긴 상태다. 지난 6월 남북이 합의한 ‘9월 태권도 시범단 방북’마저 한반도 긴장 고조 속에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런 불통 상태가 더 계속돼선 안 된다. 정부의 지원 방안이 나오자 벌써부터 일각에선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마당에 무슨 대북 지원이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꿋꿋하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 남북 관계 복원의 물꼬를 터야 한다.

논리 vs 논리
인도적 차원이지만 왜 지금인가 vs 정치 상황과 관계 없이 추진해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참석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참석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지난 21일 정부는 국제기구들이 요청한 바에 따라 북한에 대해 800만 달러(90억원) 규모의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으로, 임산부와 5세 미만의 아동 등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겨레와 중앙 또한 인도적 지원의 취지에는 모두 찬성한다. 중앙은 “북한 동포에 대한 지원은 800만 달러가 아닌 그 10배, 100배라도 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한겨레는 정부가 비판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꿋꿋하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라고 충고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지원 시점 등을 놓고는 중앙과 한겨레의 입장이 완전히 엇갈린다. 중앙은 인도적 지원에는 반대할 것이 없지만 왜 하필 지금이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정부의 지원 계획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지 11일 만에 전격 발표됐다. 유엔의 북핵 제재안이 결의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이 점에서 “아무리 인도적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중앙의 평가엔 설득력이 있다.

반면 한겨레는 “군사정권 시절 말고 남북 관계가 이렇게 꽉 막힌 적이 있었는지”를 물으며 “제재·압박과 함께 대화의 필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했던 남북 화해 협력은 인도적 지원에서부터 물꼬가 트인 측면이 있다. “무려 10차례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북한에 실질적 타격을 주지 못했”던 현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늘 전쟁 위험성만 키워왔다는 측면에서 한겨레의 주장 역시 귀를 기울일 만하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주장에 박수를 보내기란 쉽지 않다. 대북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쏟아졌던 ‘퍼주기’라는 비판이 전혀 근거 없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이어졌던 우리 측의 지원에도 별로 달라진 바가 없다. 적어도 핵 문제 해결 전략 차원에서만 보자면 인도적 지원은 큰 효과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겨레 사설에는 보다 깊은 논의가 담겨 있다. 한겨레는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불러내려면 제재·압박 위주의 강경책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라고 말한다. ‘제재·압박 위주의 강경책’을 외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대화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도 미묘하다. 북핵 문제에서 두 나라는 서로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싶지 않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주도하면서도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계속하겠다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맥이 통해 보인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한목소리로 외치지만 입장이 미묘하게 다른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먼저 화해 메시지를 던져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라는 중앙의 표현 속에서도 한반도 운전자론의 일면이 엿보인다.

정부가 인도적 지원 검토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북한은 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런 북측의 행보로 볼 때 정부의 유화적인 태도가 “국제적인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중앙의 지적은 일 리 있어 보인다. 철저하게 미국·일본과 보조를 맞추어 강경책을 펼쳐야 핵무기를 향한 북한의 집착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면 2006년 이후 계속돼 왔던 국제사회의 북핵 제재가 큰 효과가 없었다는 한겨레의 주장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두 사설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과 고민을 잘 보여준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