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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악통령·불망나니” 트럼프 “로켓맨 오래 못 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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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매체가 24일 공개한 ‘북극성 미사일’이 미 항모 칼빈슨함을 타격하는 합성 사진. [연합뉴스]

북한 매체가 24일 공개한 ‘북극성 미사일’이 미 항모 칼빈슨함을 타격하는 합성 사진. [연합뉴스]

북·미가 상대 지도자를 향해 극단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다. ‘말의 전쟁’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며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위험 수위 넘나드는 ‘말의 전쟁’ #이 “참수 기미 보일 땐 선제 행동” #막말 유엔 연설에 총회장 싸늘해져 #트럼프 “방금 연설 들었다” 트윗 #미국 내선 인신공격성 비판 우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신이상자’라고 몰아세웠다. 또 ‘고통만을 불러오는 최고통(最苦痛) 사령관’ ‘거짓말의 왕초’ ‘악의 대통령’ ‘늙다리’ ‘불망나니’ ‘깡패’라고도 했다. 험구(險口)의 연속이었다.

이 외무상은 이날 “우리를 위협하는 망발과 폭언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나도 같은 연단에서 같은 말투로 대답하는 것이 응당하다”며 연설 초반 대부분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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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무상은 “트럼프는 자기 망언으로 취임 8개월 만에 백악관을 주판알 소리 요란한 장마당으로 만들어 놓은 데 이어 유엔 무대까지 돈과 칼부림밖에 모르는 깡패들의 난무(亂舞)장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는 상식과 정서가 온전치 못한 데로부터 우리 국가의 최고 존엄을 로켓과 결부하여 모독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그는 전체 미국 땅이 우리 로켓의 방문을 더더욱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만회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 등으로 강력 반발해 온 북한은 이 외무상의 기조연설에서도 보복 조치를 거론하며 미국을 재차 위협한 것이다. ‘미국 땅에의 로켓 방문’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미국이 사정권 안에 든다는 걸 표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외무상은 이어 “미국과 그 추종 세력이 우리 공화국 지도부에 대한 참수나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 기미를 보일 때에는 가차 없는 선제 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무상의 기조연설에 대한 유엔총회장의 반응은 싸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무상은 베네수엘라·쿠바·시리아를 일일이 거명하면서 연대감을 내세웠지만 대부분의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에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트위터에 “방금 북한 외무상의 유엔 연설을 들었다”며 “만약 그가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김정은)’의 생각들을 따라한 것이라면 (그들은)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도부의 공격과 그에 따른 트럼프의 반격은 최근 반복된 현상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완전 파괴’를 언급하자 김정은이 21일 자신 명의로 직접 낸 성명에서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 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같은 날 이 외무상은 이에 대해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상에서 하지 않겠나”라고 했었다.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트위터에서 “북한 김정은은 인민을 굶주리게 하거나 죽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명백한 미치광이(madman)”라고 즉각 맞대응했다. 같은 날 저녁 지지자 연설에서도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으로 지칭하며 “(전직 대통령들이) 진작에 처리했어야 했다”고 압박했다. 그는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 위협에 대해 “우리는 뭔가 할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같은 대치를 두고 신성원 국립외교원 연구부장은 “북한이 ICBM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세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며 “ICBM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북한과 이를 무시하면서 억제하려는 미국의 셈법이 말의 전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내에선 유례없는 정상 간 인신공격성 비판이 이어지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아래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군사 전문가 코리 섀크는 뉴욕타임스에 “다른 지도자를 조롱하는 방식은 성공률이 높은 외교 전략이 아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한편 미국을 향해 독설을 쏟아부었던 이 외무상은 유엔 관계자들에겐 대북 지원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4일(현지시간)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니세프는 최근 이 외무상 일행을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올해에도 이 외무상은 비공개로 유엔 인도주의적 대북지원기구 관계자들을 만나 지원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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