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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독립 땐 축구도 독립? FC바르셀로나의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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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주정부가 공언한 분리독립 주민투표(10월 1일)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투표를 강행하려는 주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스페인 정부가 결사적으로 맞서면서 양측의 긴장이 극단으로 치닫는 중이다.

스페인 국기(왼쪽)과 카탈루냐 깃발.

스페인 국기(왼쪽)과 카탈루냐 깃발.

스페인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를 급습해 관료들을 체포하고 자치정부 예산권을 사실상 몰수하는 초강수를 뒀다.
중앙정부의 실력 행사에 카탈루냐인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시위대 수천 명은 자치정부 청사 앞에 모여 관료를 연행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카탈루냐 사람에게 축구는 정체성 #2014년 비공식 분리독립 투표 때 #FC바르셀로나 선수들 적극 투표 #스페인법 "영토 내 클럽만 리그에" #독립 땐 바르샤 라리가 탈퇴해야 #국가대표 전력엔 당장 영향 없을듯

이번 사태는 한 국가가 쪼개져 신생국가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치 및 국제정세 이슈다. 역사와 지도를 바꿀만큼 거대한 사건엔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문제도 연결돼 있다.
스페인과 카탈루냐가 문화·언어만큼이나 갈등해 온 축구다.

카탈루냐가 분리독립 투표를 추진할 때부터 전 세계 축구팬들은 카탈루냐의 ‘축구 독립’에 촉각을 세웠다. 최강으로 꼽히는 스페인 축구는 물론, 명문 구단 FC바르셀로나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 [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 [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지난 11일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인들이 대형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와 ‘주민투표는 민주주의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쳐 들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지난 11일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인들이 대형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와 ‘주민투표는 민주주의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쳐 들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캄프 누에서 독립 만세 부를 때 진정한 독립”

‘카탈루냐가 독립할 경우 스페인 축구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이다. 당시 카탈루냐 주정부는 비공식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80.7%가 독립 찬성에 표를 던졌지만, 투표율이 35%에 불과해 결과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는 그때도 투표에 대해 “비민주적이고 불법이며, 쓸모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영국 일간 가디언은 FC바르셀로나 선수 및 관계자가 투표하는 현장을 전달했다. 구단 회장을 지낸 산드로 로셀, 현 회장인 조셉 마리아 바르토메우와 사비 에르난데스, 세르히 로베르토, 마르틴 몬토야 등 선수들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특히 선수들은 전날 남부 알메리아에서 열린 원정경기를 마친 뒤 비행기로 급히 귀환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태생의 헤라르드 피케. 그는 공개적으로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한다. [AP=연합뉴스]

바르셀로나 태생의 헤라르드 피케. 그는 공개적으로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한다. [AP=연합뉴스]

카탈루냐 출신 축구선수 사비 에르난데스. 2015년까지 FC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그는 바르셀로나의 전설로 불린다. 현재는 카타르 알 사드에서 뛰고 있다. [신회=연합뉴스]

카탈루냐 출신 축구선수 사비 에르난데스. 2015년까지 FC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그는 바르셀로나의 전설로 불린다. 현재는 카타르 알 사드에서 뛰고 있다. [신회=연합뉴스]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FC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축구 클럽 이상이다. 카탈루냐의 정신이고 자부심이다.
“캄프 누(FC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날이 바로 우리가 독립을 이룬 날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바르샤, 독재 함께 견딘 카탈루냐의 정신

FC바르셀로나가 ‘클럽 이상의 클럽’이 된 건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탄압을 카탈루냐인들과 함께 견뎠기 때문이다. 카탈루냐를 핍박했던 그는 FC바르셀로나도 곱게 보지 않았다.
1925년엔 관중들이 스페인 국기를 모독했다며 경기장을 폐쇄했고, 37년엔 클럽 회장이던 호셉 수뇰이 프랑코의 병사들에게 살해됐다. 투어 중 이 소식을 들은 선수단의 절반은 귀국하지 않고 망명했다.
FC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인들이 독립의 열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집회와 회합이 금지된 가운데 축구장만이 카탈루냐의 단합을 확인하는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뼈에 사무친 역사는 프랑코가 사망하고 자치권을 회복한 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의 대표팀으로 뛰는 카탈루냐와 스페인 출신 선수들이 갈등하면서 스페인 대표팀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 80~90년대 스페인 대표팀은 ‘레알파와 바르샤파가 분열돼 성적을 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수시로 들어야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신세대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지역 갈등을 상당히 해소됐다. 스페인이 세계 최강으로 올라선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카탈루냐 출신 선수 중 일부는 여전히 노골적으로 스페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헤라르드 피케가 대표적이다. 카탈루냐 독립을 공개 지지하는 그는 지난해 스페인 국가가 연주되는 도중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레알마드리드(왼쪽)과 FC바르셀로나의 엠블럼. [각 구단]

레알마드리드(왼쪽)과 FC바르셀로나의 엠블럼. [각 구단]

구단 “카탈루냐인의 뜻 지지한다”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지만, FC바르셀로나는 이처럼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2014년 투표 때 구단은 상당히 신중했다. ‘카탈루냐, 유럽의 다음 국가’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걸 수 없다고 결정했고, 선수들이 투표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모양새다. 경찰이 주정부 청사를 급습한 날 구단은 성명을 발표헸다.
“FC바르셀로나는 국가와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는 역사적 소명에 충실할 것이며 자유로운 권리 행사를 침해하는 모든 것을 비난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구단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카탈루냐인 다수의 뜻을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의 권리인 투표를 막는 스페인 정부를 비판하고, 투표를 강행하는 주정부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투표가 예정대로 치러지고, 독립 찬성 결과가 나온다면 FC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에서 뛸 수 없다. 스페인 법이 영토 내 클럽과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지대에 있는 안도라공국에만 리그 참가 자격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 땐 카탈루냐주 수도 바르셀로나에 연고를 둔 FC바르셀로나도 리그를 떠나거나 스페인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

라리가 “리그 떠나면 최고 팀에서 추락”

하비에르 타바스 라리가 회장은 지난 8일 “독립투표가 진행되면 FC바르셀로나 등 카탈루냐의 클럽들은 라리가에서 경기할 수 없다”며 “네덜란드 리그보다 나을 게 없는 카탈루냐 리그에서 뛰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리그를 떠나서는 중계권료도 적게 벌 것이고, 유럽 최고의 팀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타바스 회장은 카탈루냐에만 ‘축구 독립은 택도 없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지만, 라리가 입장에서도 카탈루냐의 축구 독립은 손해다.
리그의 높은 위상에 FC바르셀로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유럽 최고의 클럽인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숙적인 라이벌이다. ‘어차피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가 우승하는 리그’라고 할만큼 두 팀의 존재는 라리가에 절대적이다. 양 팀의 더비 경기인 ‘엘 클라시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축구경기 중 하나다.
수퍼스타들이 모여 경기 수준이 워낙 높은 데다, 자존심을 걸고 죽기살기로 맞붙는 게임이 박진감 넘치기 때문이다.

함께 할 때 가장 빛나는 두 팀이 분리되는 건 레알 마드리드도 원치 않는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지네진 지단은 “바르셀로나가 없는 라리가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미국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에서 경기 중인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AP=연합뉴스]

지난 7월 미국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에서 경기 중인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AP=연합뉴스]

“바르샤-레알 양축…바르샤 없이는 타격”

실제 독립이 실현될 경우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은 “현재 유럽 랭킹 1위인 라리가의 위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라리가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보다 돈은 없지만 바르셀로나-마드리드를 양대 축으로 1위에 올랐다”며 “바르셀로나가 떨어져나갈 경우, 라리가는 잉글랜드에는 바로 밀리고 시간이 가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도 밀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스페인 대표팀의 전력이 당장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피케, 사비 등이 대표팀에서 활동한 2014년까진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주축이 됐지만 지금은 마드리드 선수들이 많다”며 “카탈루냐가 독립해도 지금 당장 스페인 대표팀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손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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