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탈원전 위해 사우디 원전 수출 포기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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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팔을 걷어붙였다.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해 미래 에너지원(源)을 원전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2032년까지 원전 17기를 건설하기로 하고 최근 1.4GW급 원전 2기 건설에 대한 국제 설명회를 열었다. 다음달에는 건설비 200억 달러(약 22조원)가 소요되는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계획은 한국이 주도해 온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 건설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국은 독자적 기술로 개발한 3세대 원전 APR 1400을 UAE에 수출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신형 원자로는 신고리 5, 6호기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한국형 원전이 국내외에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자국에서 포기하려는 원전을 수입할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 원전 수주는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어떤가. 지난 18일 국제 설명회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서기관을 대표로 보냈다. 반면 중국은 상무부총리가 사우디 왕세자를 직접 만났다. UAE 원전 건설을 계기로 한국이 차려 놓은 중동의 원전 건설 잔칫상을 자칫 중국에 내줄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원전 수주는 국가적 총력을 다해도 어렵다. 한국은 2010년 요르단, 2011년 터키 원전 수주에 잇따라 실패했다. 미국·일본·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원전 강국의 벽을 넘기 쉽지 않아서다. 최근엔 도시바가 한 발 물러서면서 영국 원전도 수주할 기회가 생겼지만, 이 역시 한국의 탈원전 선언에 따라 중국이 가로챌 기회를 엿보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 300조원의 원전시장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포기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원전 수주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