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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손잡이에 다이아몬드 911개 심은 남자

중앙일보

입력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떠 만든 태양 가면, 1709년. [사진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떠 만든 태양 가면, 1709년. [사진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이 남자, 태양이 되고 싶었나 보다. 태양 가면을 만들어 썼다. 1709년 자신이 폴란드 왕으로 복귀한 것을 기념해서다. 자기의 얼굴 모양을 떠서 구리 가면을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혔다. 태양 주변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꽤나 위압적이다. 18세기 독일 작센의 선제후(選帝侯·황제 선거 자격을 가진 제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1670~1733·Augustus the Strong)’다. 프랑스 루이 14세(1643~1715)를 모델로 삼아 절대군주 이미지를 굳혔다.

18세기 폴란드왕 아우구스투스 특별전 #바로크 시대 명품 130여 점 국내 첫선 #태양가면 만들어 쓰며 위세 드러내기도

다이아몬드를 심은 작은 검과 칼집. 1782~1789년경. [사진 드레스덴 그린볼트박물관]

다이아몬드를 심은 작은 검과 칼집. 1782~1789년경. [사진 드레스덴 그린볼트박물관]

 뿐만 아니다. 그가 쓰는 작은 검 손잡이에는 다이아몬드 911개를 붙여 넣었다. 섬세하면서도 화려하다. 무기라기보다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장용 검이다. 왕의 아들(아우구스투스 3세)도 아버지의 취향을 물려받았을까. 부친이 남긴 훈장을 다이아몬드 369개로 장식했다. 선왕(先王)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받은 기사단 훈장이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군복. 1700년경. [사진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군복. 1700년경. [사진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수집욕이 대단했다. 세상의 빛나는 물건을 모아 자신의 권위를 드러냈다. 궁전에 박물관도 세워 왕실의 위세를 자랑했다. 그 때문일까. 전시장 전체가 화려함 자체다. 19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11월 26일까지)이다. 당시 독일 일대는 신성로마제국이 지배했다. 통치권이 아무리 강해도 왕이 되려면 황제의 허락이 필요했다. 왕이 되고자 열망했던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1697년 폴란드 왕에 올랐다.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세우고 각 지역을 통치자를 초청하며 절대왕정의 꿈을 키웠다.

여성 형상의 술잔. 1603~1608년경. [사진 드레스덴 그린볼트박물관]

여성 형상의 술잔. 1603~1608년경. [사진 드레스덴 그린볼트박물관]

 이번 전시는 아우구스투스를 중심으로 17세기 말~18세기 독일 바로크 문화의 진수를 소개한다. 하이라이트는 당시 최고 수준의 예술품·공예품을 수집·전시한 ‘그린 볼트(Green Vault)’다. ‘강건왕’은 상아·청동·은 등 재질에 따라 모두 7개의 방을 만들고, 그곳에 당대를 풍미했던 명품·진품을 전시했다. 유럽 최초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연유다. 일례로 ‘여성 형상의 술잔’을 보자. 은에 도금을 한 술잔으로, 당시 결혼식 술자리 놀이에서 사용됐다. 신랑과 신부가 함께 술을 따라 마신 게 특이하다. 신랑은 종 모양의 치마에, 신부는 여성이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작은 잔을 비웠다고 한다. 문양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다.

중국 청화백자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경. [사진 드레스덴 도자기박물관}

중국 청화백자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경. [사진 드레스덴 도자기박물관}

 전시에는 모두 130여 점이 나왔다.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에 대단한 애착을 보였던 ‘강건왕’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자기는 유럽에서 ‘하얀 금’으로 불릴 정도로 매우 귀하고 인기 있는 물건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 컬렉션으로 ‘도자기 궁전’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또 동양 도자기를 모방해 오늘날 유럽을 대표하는 도자기 브랜드인 마이센 자기를 빚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경. [사진 드레스덴 도자기박물관]

일본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경. [사진 드레스덴 도자기박물관]

 출품작은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소장품이다.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은 회화·조각·공예품·무기 등 15개 박물관으로 구성됐다. 올해로 설립 457년을 맞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연합체다. 이번에는 전시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전시장 곳곳에 초정밀 확대 사진 구조물을 설치했다. 드레스덴 궁전에 들어온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궁전 벽면과 소장품을 초점을 달리해 수백~수천 장의 사진으로 찍고, 이를 다시 보정해 하나의 작품으로 합성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독일 문화를 대규모로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18세기 유럽 바로크 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 맞춰 방한한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박물관연합 총관장은 “바로크 시대 유물에 대한 단순 소개를 넘어 당시의 문화 다양성과 국제적 교류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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