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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악질 사업가 '힐러리 머리카락 뽑아와라' 현상금 걸었다가 철창 신세

중앙일보

입력

마틴 슈크렐리.[로이터=연합뉴스]

마틴 슈크렐리.[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국민들이 가장 미워하는 청년 사업가 마틴 슈크렐리(34)가 철창 신세를 졌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머리카락 때문이다.

희귀병 약값 55배 뻥튀기해 '국민 밉상' 된 청년 사업가 #판사 "돈을 대가로 폭행 권유는 헌법 위반"..구속 결정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증권사기 등 혐의로 2015년 말 연방수사국(FBI)체포됐다. 지난달 배심원단에게 유죄 평결을 받고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500만달러(약 57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검찰은 마틴이 이후 온라인으로 여성들을 괴롭히고, 북투어 중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5000달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면서 보석집행정지를 법원에 요청했다.

슈크렐리는 페이스북에 누구든 클린턴의 "머리카락 한올을 잡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5000달러를 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원글을 수정해 "이것은 풍자고 유머의 의미"라고 썼다가 다음날 새 글에서 "5000달러는 머리카락에 모낭이 붙어있어야 유효하다"고 썼다. 클린턴의 DNA와 대조를 해야 한다면서다. 이 글 때문에 미국 비밀경호국이 조사에 착수했고, 북투어에 나선 클린턴 전 장관의 경호를 강화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슈크렐리의 변호인은 "순간적인 판단 착오일 뿐 폭력은 아니며, 미성숙, 풍자, 비뚤어진 유머 감각"이라고 방어했다.
하지만 부르클린 법원의 키요 A. 마츠모토 판사는 "그게 뭐가 웃긴가? 자기 팔로워가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는 5000달러를 걸고 사람을 습격하라고 간청하고 있다"며 꿈쩍하지 않았다.

판사는 결국 "돈을 대가로 폭행을 권유하는 행위는 수정헌법 1호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면서 구속정지집행을 취소하고 재구금했다. 미국의 수정헌법 1호는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판사는 슈크렐리의 글은 진정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슈크렐리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약 10만 명이다. 변호인이 슈크렐리가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내년 1월 16일 선고가 이뤄질 때까지 구금된다.

슈크렐리는 악명높은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제약회사 튜링의 CEO 출신이다. 뉴욕 명문 헌터칼리지를 중퇴한 슈크렐리는 2011년 바이오 기업 레트로핀을 창업하고, 2015년 튜링을 설립하면서 청년 사업가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 9월 에이즈 치료제 다라프림의 제조권을 사들인 직후 1정당 13.5달러이던 약값을 750달러로 무려 55배나 올렸다. 약의 제조 원가는 1달러였다. 복제약 등 대체 약품이 없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들은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슈크렐리는 약값 폭리 논란으로 청문회에 소환되어서도 볼펜을 돌리며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청문회 내내 비웃는 표정과 말투로 일관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트위터에 "이런 얼간이들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남겼다. 2015년 미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건 중 하나였고, 그는 일약 '국민 밉상'으로 떠올랐다.

마틴 슈크렐리.[AP=연합뉴스]

마틴 슈크렐리.[AP=연합뉴스]

슈크렐리는 과거에 세운 헤지펀드 MSMB캐피털과 바이오기업 레트로핀을 운영하면서 증권사기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등 8가지 혐의로 기소됐고 그중 3건에 대해서만 유죄 평결을 받았다. 죄목별로 최고 징역 20년형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슈크렐리는 판결 직후 "엄청난 마녀사냥이었지만 결국 대다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뉴욕 자택에서 유튜브 생중계로 "처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약값 때문에 미운 털이 박혀 죄를 뒤집어 썼다고 주장했다.

슈크렐리는 청문회 소동 이후 튜링 대표에선 물러나긴 했지만 WP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약값은 아직도 그대로다. 우리나라에선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 의약품 가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결정하지만, 미국은 제약회사가 정한다. 또 다라프림은 희귀병 치료제라 미국 내에서도 한 해에 처방되는 빈도는 8000번 정도다. 시장이 너무 작아 복제약을 만들겠다고 달려드는 회사가 없어 독점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호주 고등학생들이 이 약 성분을 실험실에서 배합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슈크렐리는 트위터에서 "인건비랑 장비 값은? 물리화학자들을 공짜로 부릴 수 있다는 건 몰랐네. 나도 내 약을 만들 고교생을 고용해야겠어. 하긴, 실험실을 공짜로 쓸 수 있는데 장비가 왜 필요하겠어. 학생들을 도왔다는 그 교사들도 공짜로 일해주겠지"라며 비꼬았다.

슈크렐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윤리가 없는 기업가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여주는 사례다. 9일 남긴 페이스북 게시글에선 '내 꿈은 언젠가 정부에서 대중의 하인이 되어... 돈을 엄청나게 버는 것"이라고 남기도 했다. 그로선 유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업가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보자면 농담같지 않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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