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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도 시민 … 정치적 의견 뭐가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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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인 축에 속하지만 대담하게 정치·사회적 의견을 내는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사진 빈체로]

신인 축에 속하지만 대담하게 정치·사회적 의견을 내는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사진 빈체로]

영국의 122년 된 대표적 여름 음악축제 BBC 프롬스. 올해 7월 열린 첫 무대는 다소 도발적이었다. 축제의 주최측이랄 수 있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은 것은 여느 해와 같았다. 다만 협연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30)가 독특했다. 베토벤 협주곡 3번을 연주한 후 청중 박수에 따라 다시 무대에 나온 그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리스트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제 주최측에서도 알지 못했던 기습 앙코르였다.

30세 피아니스트 레비트 #BBC 프롬스서 브렉시트 비판 #오늘 서울 예술의전당서 협연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EU)의 공식 국가다. 레비트는 옷깃에 EU 배지를 달고 있었다. 1년 전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브렉시트에 대한 정면 비판이었다.

젊은 신인 피아니스트의 대담한 행동이었다. 러시아 태생으로 8세에 독일로 이민 온 레비트는 BBC가 1년 전 유망한 아티스트로 선정했던 피아니스트이며 프롬스의 개막 공연 출연은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영국 자존심인 축제 한가운데서 그는 영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레비트를 전화로 인터뷰 했다.

프롬스의 앙코르는 용감해보였다.
“용감함이 아니다. 나는 어떤 위협도 받지 않았다. 위협을 당하면서도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그건 꼭 필요하고, 긴급하고, 중요한 행동이었다.”
연주자가 정치·사회적 의견을 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일반적 생각이다. 특히 신인 연주자는 더 그렇다.
“연주자 또한 시민으로서 책임이 있다. 위험하다는 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음악 또한 사회 속에서 정치인들의 판단에 따라 변화한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걸 숨길 이유가 없다. 예술가들은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사회에 대한 의견을 더 많이 내야 한다.”
또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표할 생각인가.
“무대 위에서 뿐 아니라 삶의 어떤 순간에든 내 뜻을 표출한다. 사람들을 돕고 난민 수용 정책을 지지한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생각이다.”

피아니스트로서 레비트는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에서 탐을 내는 연주자다. 특히 2013년부터 낸 음반들이 좋은 평을 받았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집은 2016년 영국 그라모폰지의 올해의 레코딩상을 받았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런던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과 협연하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는 “음악을 해석할 때 상상력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아이디어를 얻고 표현하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다”고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내년부터 이끌게 될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45)도 아시아 투어의 협연자로 레비트를 선택했다. 레비트는 1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페트렌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한다.

러시아 혈통이 있는 지휘자·피아니스트가 러시아 작곡가를 골랐다. 레비트는 “워낙 어릴 때 독일로 왔기 때문에 나는 전형적인 독일인이다. 다만 페트렌코와 나 모두 음악을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뉘앙스를 러시아 작품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한공연에서 페트렌코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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