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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AK 디자인네트워크 에이미 김 대표…톡톡 튀는 괴짜, 인테리어 거물로 자라다

미주중앙

입력

세상 가장 부러운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가 아닐까. 혹자는 그 무엇이 됐든 밥벌이가 되는 순간 그 열정과 애정이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터. 미국은 물론 세계시장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해 주목받고 있는 인테리어 전문업체 AK 디자인네트워크(akdesignnetwork.com) 에이미 김(38) 대표가 그러하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청춘의 열정을 좇아 오늘에 이른 이 괴짜 사업가를 LA다운타운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괴짜 미술학도의 열정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89년 풀러턴으로 가족이민 온 그녀는 OC예술학교(OCHSA) 졸업 후 패서디나 아트센터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빈 병이나 종이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공부는 체질이 아니었나 봐요.(웃음) 그래서 일반고에 진학했다 방황의 시간을 거쳐 10학년 때 예술고로 전학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해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전학 후 그녀는 금세 교내 유명인사가 됐다. 미술 수업 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급우들의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그녀의 작품과 과제물에 교사들의 칭찬이 쏟아졌기 때문.

"한번은 스케치북 대신 제 팔에 그림을 그려가기도 했고 생물 선생님께 숙제 대신 수업에 필요한 생물도감을 그려가겠다 제안을 하기도 했죠. 이런 저를 보고 친구들이 괴짜라고 불렀죠.(웃음)"

1998년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녀의 톡톡 튀는 예술적 영감은 더 빛을 발했다. 자신의 발과 손을 석고로 떠 거기에 매일의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 석고상들이 수 십여 개에 이르자 이를 신선하게 본 학교 당국이 그녀에게 전시요청을 하기도 했다.

"당시엔 하루 4시간도 못자면서 밤샘작업을 하고 옷과 얼굴엔 늘 페인트를 묻히고 다니면서도 정말 행복했죠. 그땐 정말 미술에 미쳐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

#청춘의 열정을 좇아 

2002년 대학을 졸업 한 그녀는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취직했다. 그러나 같은 그림만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녀는 넉달 만에 퇴사하고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후 그녀는 홈데코 제작업체에서 디자이너로 2년, 가구업체로 이직해 마케터와 디자이너로도 2년을 근무했다.

"두 곳 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디자이너 업무 외에도 제작과정도 지휘하고 홍보까지 하는 등 1인 2역, 3역을 해야 했죠. 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제 사업을 하는데 그때 쌓은 인맥과 경험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죠."

이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그녀는 SBE 디자인팀 매니저로 입사한다. 현재 SBE는 LA에 본사를 두고 SLS호텔, 일식당 카수야 등 유명 식당과 호텔 등 20여 개가 넘는 브랜드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지만 그녀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창립한지 몇 년 안 된 신생 기업이었다.

"처음 입사해선 팀원이 3명이었는데 호텔과 식당 등 브랜드 4개를 1년 만에 론칭했으니까 정말 빡세게 일한 셈이죠.(웃음) 당시 주 7일 근무는 말할 것도 없고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이 넘어서 퇴근하기 일쑤였죠."

이런 노력 덕분에 그녀는 재직 시절 유명 디자인매거진에서 선정한 '영 디자이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3년 뒤 그녀는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바이스로이 호텔의 마케팅 및 인테리어 담당 매니저로 이직했다.

#인테리어에 예술을 담다 

각국에 론칭하는 호텔 인테리어를 담당하느라 세계를 무대로 신나게 일하던 그녀에게 2010년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SBE 재직 시절 한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적 있는 사업가가 한번 보자고 해 나갔더니 라스베이거스에 '슈거 팩토리'라는 캔디 스토어 겸 레스토랑을 오픈하려는데 인테리어를 맡아 달라는 거예요. 현재 라스베이거스 명물인 슈거 팩토리를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당시 그 업체는 나이트클럽까지 겸한 3000만 달러짜리 대형 프로젝트였죠."

좀 생각해보겠다고 할 법도 한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녀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단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사직서를 냈다. 당시 그녀는 할리우드 2베드룸 아파트에서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곳을 사무실 삼아 프리랜서 직원 2명을 고용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6~7개월 정도 걸려 슈거 팩토리는 성공적으로 오픈했고 이후 슈거 팩토리 대표의 소개로 인근 플래닛 할리우드 호텔 나이트클럽 리노베이션까지 맡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사무실을 얻고 'AK 디자인 네트워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제 디자인을 럭셔리 업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그저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마도 이는 제가 순수예술을 공부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AK디자인네트워크는 금세 업계의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고 디자인 의뢰가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왔다. 2011년 영국출신 스타 셰프인 고든 램지가 LA에 론칭한 '팻 카우' 레스토랑 디자인을 맡은 걸 계기로 벨에어 소재 그의 자택 인테리어도 그녀가 담당했다. 이후 LA,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소재 유명 식당과 호텔, 콘도 인테리어를 맡으며 회사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AK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게 된 계기는 2012년 한 홍콩 기업이 필리핀과 마카오에 동시 건립한 초대형 카지노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부터. 이를 계기로 그녀는 작년엔 상하이 유명 호텔 내 식당을, 올해엔 3000만달러 규모의 두바이 매리엇 호텔 내 모든 레스토랑 인테리어공사를 진두지휘했다. 최근엔 LA와 라스베이거스에 동시 오픈 예정인 한식당 인테리어까지 맡아 그녀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처럼 1분1초까지 알뜰히 쪼개 쓰는 워커홀릭의 미래 계획은 분명 남다르지 싶었다. 그러나 웬걸,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해 왔지만 지금껏 특별한 계획을 세우며 살진 않았어요. 그저 그 순간 제 마음이 원하는 일에 충실하다 보니 오늘에 이른 거죠. 그래도 굳이 계획해야 한다면 언젠가는 제 호텔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꿈입니다."

맞다. 꿈을 이루는 데 공식 따위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고(故)김광석의 말처럼 누가 뭐라 하든 좋아 하는 일 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 그저 오늘에 이른 것 일뿐. 세상 모든 꿈은 그렇게 이뤄져 온 것을.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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