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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 4만6000명 정규직화 무산 … “정부가 희망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을 왜 정부가 나서서 헛된 희망 고문만 했는지 모르겠어요.”

문 대통령 취임 초 “비정규직 제로” #신분 전환될 거란 기대감 갖게 해 #교육부 “임용 교원과 형평성 문제” #방과후 강사 등만 무기계약으로

11일 기간제 교사 4만6000여 명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교육부 발표를 접한 한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의 푸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 일성이었던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이 ‘희망 고문’이 되고 말았다.

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교육분야 비정규직 개선 방안’에 따르면 5만5000여 명의 비정규직 교원 중 유치원 돌봄교실·방과후 강사 1034명만 정규직에 준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또 학교직원 중 회계직원(교육공무직원) 1만2000명이 시·도별로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된다. 반면 기간제 교사 4만6000여 명(사립학교 포함)과 영어회화·스포츠 등 5개 직종의 강사 7000여 명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남는다.

신익현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장은 “임용시험을 통해 교원을 뽑고 있는 상황에서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사회적 형평성 논란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신 “비정규직이 차별받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처우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는 “정부가 괜히 먼저 들쑤셔 놓은 탓에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논란이 번졌는데, 앞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해 나갈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논란은 정부 책임이 크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첫 일성으로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또 취임 사흘째(12일) 첫 번째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임기 내에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연내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이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문 대통령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가장 먼저 학교가 반응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31만 명 중 학교 비정규직(14만 명)이 절반가량에 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 29~30일 학교 비정규직 1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지난 7월 20일 고용노동부가 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기간제 교사 등이 제외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기간제 교사들은 주말마다 집회를 열고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다.

반면 대부분 임용고시를 치른 현직 교사들은 형평성을 들어 정규직화에 반대했다. 교대·사범대생들까지 가세했다. 정규직이 늘어나면 그만큼 임용시험 선발 인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평소 극명하게 대립해 온 한국교총과 전교조도 이번에는 한목소리로 임용시험 준비생과 현직 교사들의 편을 들었다.

교육부가 지난달 8일부터 ‘교육분야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7차례 회의를 개최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익명을 요청한 교육부 관계자는 “현 정부의 핵심 사업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어설픈 정책 추진 과정을 비판한다. 현영섭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는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도 “정부가 불가능한 희망을 심어 준 것에 대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영섭 교수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논리로 정책을 세울 게 아니라 어느 분야에 몇 명의 교사가 필요한지 제대로 된 수요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만·이태윤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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