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문재인 정부서 빛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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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8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7개 사업장 노동조합이 한자리에 모였다. 광주시가 추진 중인 ‘광주형 일자리’ 정책의 성공을 기원하는 지지 행사였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노동조합이 상급단체의 벽을 허물고 모여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기원하는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 광주광역시 한 목소리 #노사·지자체·지역 시민단체 참여 #임금 낮춰서 기업에 고용 확대 유도 #100대 국정과제에 새로 포함 #기존 노조, 일자리 확산에 반발 적어 #시장 취임 후 실제 성사된 사례 없어 #“취지 좋지만 알맹이 없다” 비판도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광주형 일자리’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지자체·시민단체·기업·노조가 협의를 통해 노사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임금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광주시는 구체적으로 연봉 4000만원대의 적정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제조업 생산시설 투자를 유치한다는 청사진을 밝혀 왔다. 계획대로 된다면 새로 고용될 인원들은 임금 4000만원을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되고, 기업은 기존보다 훨씬 인건비가 적게 드는 생산시설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광주 기아차 공장의 정규직 평균 임금은 1억원 수준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광주시는 이런 모델이 고임금과 노사관계 악화라는 ‘벽’에 부닥친 국내 기업과 고용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정책이 더 탄력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이미 광주형 일자리를 주제로 국회 세미나를 개최했고, 대선후보였던 지난 3월에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전국으로 뻗어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도 해당 내용이 포함됐다.

지역 내 ‘대타협’도 속도가 붙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6월 한국노총 광주본부와 광주경영자총협회 등 22개 기관·단체가 모여 ‘광주형 일자리 모델 실현을 위한 기초협약’을 체결하고 ▶적정 임금(연대임금) 실현 ▶적정 근로시간 실현 ▶원·하청 관계 개혁 ▶노사 책임경영 구현 등의 원칙에 합의했다. 또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혔던 기존 노조원들의 반발도 거세지 않다. 8일 열린 지지 행사가 그 결실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강성 노조가 많을 거란 외부 인식과 달리 광주는 지자체와 노조, 기업 간 관계가 비교적 잘 관리돼 왔고 일자리 문제에 있어 노조들이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다”며 “기존 근로자들에 비해 낮은 ‘연봉 4000만원 일자리’ 창출 공약에 대해 민주노총 등 상급 노조가 특별히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당장 취지는 좋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지난해 “2년간 실질적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플랜B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시의회 등에서도 “결과물도 없고 현실 가능성도 낮다”고 지적해 왔다.

또 오래 지속되기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장은 일자리가 생기면 좋지만,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임금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이후 광주형 일자리로 취업한 노동자들이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이 이 점을 걱정하고 있다. 반면에 정반대의 우려도 있다. 광주형 일자리로 생긴 새 사업장 임금에 맞춰 기존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도 함께 하향평준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광주에서 성공하더라도 경제 상황이나 노사관계가 다른 기타 지역에까지 같은 정책이 적용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우려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점점 더 해외로 나가게 되고 결국 구직자도 지역경제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과도한 임금 인상이나 다른 사업장의 임금 하락을 막기 위한 정교한 장치들을 노·사·민·정 협력을 통해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시장 역시 "광주형 일자리가 단숨에 일자리를 크게 늘리거나 모든 지역에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꽉 막혀 있는 고용·노동 시장과 노사관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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