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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가 속이 좁은 게 아니라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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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32면

부제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제목(『食史』)도 ‘한 끼 음식’이 아니라 ‘음식의 역사’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일간지 기자로 19년간 일했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산림경제』『음식디미방』『오주연문장전산고』같은 옛 책을 종횡무진, 촘촘히 비교해가며 조상의 입맛과 먹거리 이야기를 곡식·고기·생선·과채·향신·사람으로 나눠 흥미롭게 풀어낸다.

『식사』 #저자: 황광해 #출판사: 하빌리스 #가격: 1만4000원

‘두부’ 편을 보니 “전생에 지은 죄가 커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얘기가 눈길을 끈다. 두부 만드는 일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주로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힘든 일을 꾸준히 해낼 수 있는 ‘고급 인력’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일 터다. 추사 김정희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이라고 했다. 식량이 부족했으니 콩도 귀했을 것이고 게다가 많은 손이 필요한 만큼 널리 먹기는 힘든,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두부가 맛없는 식품이 된 이유로 두부를 물에 담가놓았다가 파는 공장식 대량생산 두부가 흔해지면서부터라고 아쉬워한다. “고려말 수준”이라는 일갈이다. 반면 중국 사람들이 여전히 즐기는 ‘취두부(臭豆腐)’와 ‘모두부(毛豆腐)’에서 발효 두부의 미래를 본다. 우리에게도 ‘장두부(醬豆腐)’라는 삭힌 두부가 있었지만 이젠 다 사라졌다고 혀를 찬다.

고기 편에 나오는 ‘녹미(鹿尾)’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말그대로라면 사슴 꼬리일터다. “오늘 젓가락을 댄 것은 오직 녹미뿐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영조는 녹미를 좋아했다. 하지만 꼬리 하나를 먹으려면 사슴 한 마리가 필요한 일. 영조는 말로는 ‘녹미 봉진 금지’를 수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이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은 실제로는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맛은 어떨까.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녹미는 전북 부안에서 그늘에 말린 것이 가장 좋고 제주도 것이 그 다음”이라고 밝혔다. 지방기가 많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사슴 고기도 먹기 힘든 우리 현실에서 사슴 꼬리의 맛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듯 싶다.

생선을 모아놓은 섹션에서는 위어라는 생소한 이름을 보았다. ‘위어(葦魚)’는 갈대를 닮은 혹은 강의 갈대숲 아래 노는 물고기라는 뜻인데 웅어, 웅예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위어를 횟감으로 사용했다. 겸재 정선의 친구 사천 이병연은 겸재의 그림 ‘행호관어’에 위어잡이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시를 적었다. “늦봄의 북어 국이요 / 초여름의 위어 회라 / 복사꽃 넘실넘실 떠내려오니 / 그물을 행보 밖으로 던진다.”

조정에서는 사옹원 아래에 ‘위어소’와 ‘소어소’를 두어 생선의 원활한 공급을 도모했는데, 여기서 ‘소어(蘇魚)’는 밴댕이를 말한다.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내장이 약해서 물 밖으로 나오면 잘 터지는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젓갈로 담궈 먹거나 아니면 말려 먹었다. 여기서 저자는 의문을 품는다. 생선의 운반과 보관이 힘든 시절이면 몰라도 지금은 밴댕이회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도 강화도 등 바닷가에 가면 제철 밴댕이회를 맛볼 수는 있다. 하지만 밴댕이보다 크고 모양도 좋고 맛있는 생선이 많은데 굳이 밴댕이를 찾아 먹어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과채’편에도 못 들어본 식재료 이름이 나온다. 여지다. 바로 과일 리치(Litchi)다. 리치를 좋아한 양귀비 때문에 당 현종은 운하를 뚫었고 무리한 운하 건설 탓에 당나라는 재정이 흔들렸다. ‘한낱 과일이 큰 나라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는 조선의 선비들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당당하게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의 폭군, 연산군이었다.

여지는 오키나와 등에서 공물로 바쳐졌는데, 여지의 맛에 깊이 빠진 연산군은 명나라로 가는 사신들에게 여지를 사올 것을 명령한다. 대신들은 ‘여지 수입금지’를 상소하지만 연산군은 물러서지 않는다. 폐위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여지 사랑도 막을 내린다.

옛 문헌에서 근거를 찾아가며 정리한 음식에 얽힌 내용이라 옛 이야기처럼 술술 읽힌다. 배고플 때 읽을 책은 아니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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