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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8) 아내를 아동학대로 신고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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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직장 동료로 만났습니다. 아내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하고, 어느 곳에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죠. 그런 모습에 제가 반해서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저도 아내처럼 열심히 살았습니다. 결혼할 당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전세를 구했지만, 아파트를 분양받고 대출을 갚아나가면서 양가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정도로 생활도 안정돼 갔습니다. 주말에는 아이와 지내려고 애썼고, 결혼기념일도 챙기면서 10여년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아내와 사이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죠.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에너지는 이제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돼 있어요. 아이의 매니저로만 생활합니다. 처음에는 육아와 가사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직장을 그만둔 후유증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왕성했던 에너지를 사용할 곳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 매니저로 생활하는 아내 #남편은 투명인간 취급 #아이에게 원치 않는 과도한 학습 강요도 아동학대

아내에게 다른 취미생활을 해보라고 권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과연 아이가 행복할까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과학고를 가겠다고 하는데 그게 아이의 생각인지, 아내의 결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아내는 이제 아이만 챙깁니다. 저는 아내에게 처음에는 남편이었다가 어느덧 손님이 되었는데, 이제는 투명인간입니다. 아내는 설거지하면서 제 식기를 집게로 잡습니다. 제 빨래도 그렇게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집에 들어가는 것이 끔찍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기 위해 외박하지 않고 들어갑니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아빠니까요.

그런데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계속 혼인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내는 아마도 이혼은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학원비를 아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학원비 부담을 떠나서 그 전에 이것이 과연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얘기했지만, 아내는 그런 제말은 완전히 무시합니다. 제가 대화를 하려고 카드한도를 줄이기도 했는데 저를 짐승취급 하더군요. 저는 완전히 지쳤습니다. 이런 사유로도 이혼할 수 있을까요. 아동학대로 신고를 해볼까요.

[제작 조민아]

[제작 조민아]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에 관해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아동의 신체에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치료하지 않는 것도 아동학대에 포함됩니다.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사례자가 전하는 내용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만약 아이가 공부를 강요받고 있다면 그것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만큼 공부를 시켜야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 국민들은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부모들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미덕이라고 여기고 있죠. 무조건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동학대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은 새벽 4시까지 초등생 딸의 공부를 강요한 아내와 이혼하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그 사안에서 엄마는 초등학생 아이를 재우지 않고 공부를 시키고 아이에게 많은 과목의 과외수업을 받게 했습니다. 또 아이가 제대로 하지 않거나 성과가 나지 않을 때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아내는 이혼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이혼을 명하고 아이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아빠를 지정했습니다.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고려한 판결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례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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