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중앙일보 대학평가 <상> 이공계 학과평가 - 전자공학
영화 ‘her’(2013년, 미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은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만다를 만난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만다를 사랑하게 된다. 과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61개 학과 중 포스텍 등 6곳 '최상' #저전력 OLED 연구 활발, 한양대 #학문 융합 '스마트 패션', 국민대 #교내 입주 기업들서 실습, 산기대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의 김종환 교수팀은 ‘현실판 사만다’를 만드는 연구에 한창이다. 김 교수는 지난 6월, 사람의 표정·음성·성향 정보를 분석해 대화를 이어나가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했다. 로봇에 탑재하면 외로움을 달래는 말동무 로봇이나, 사용자 기분까지 눈치 채는 가사도우미 로봇 등을 만들 수 있다.
김종환 교수는 “사용자의 질문·명령에 답하는 스마트폰 음성인식서비스 수준을 넘어서 감정을 살펴 대화를 하는 ‘디지털 생명체’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7 중앙일보 대학평가 전자공학과 평가에서 KAIST·UNIST·고려대(안암)·연세대(서울)·포스텍·한양대(서울) 총 6개 대학이 ‘최상’ 에 올랐다. 경북대·성균관대·중앙대 등 9개 대학은 ‘상’으로 평가됐다. 상위권에 오른 학과들은 공통적으로 ‘차세대 먹거리’가 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 강국인 한국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는 연구가 성과를 내고 있다. 최상에 오른 한양대(서울) 융합전자공학부의 김재훈·유창재 교수팀은 적은 전력으로 기존 화면보다 60% 더 밝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광효율 개선 방법’을 올 6월 개발했다. 또 반도체나 무선통신 등 다양한 분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교수 1인당 교내연구비 3위, 교외연구비 5위)
국제논문 한 편당 인용된 횟수만 보면 경기대 전자공학과가 선두다. 모바일 기기의 안테나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안에 대한 연구 논문을 다수 발표한 성영제 교수 등 소속 교수들의 논문이 고르게 피인용됐기 때문이다.
독특한 연구에 도전하는 곳도 있다. 중상에 오른 국민대는 전자공학부만이 아니라, 여러 학과가 참여해 패션과 IT를 융합한 ‘스마트패션’ 연구를 2015년에 시작했다. 옷의 단추를 누르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옷의 색상·문양을 실시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는 대학 차원의 연구비 지원이 많아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교원 1인당 교내연구비 5위) 이 학과의 배명진 교수는 ‘소리박사’로 유명하다. 배 교수는 최근 불쾌감을 줄인 자동차 경적 소리를 개발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는 경적 대신 짧은 시간내에 단계적으로 소리가 커지는 경적으로 보행자가 받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실무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대학도 있다. '상'을 기록한 한양대(ERICA) 전자공학부는 특히 현장실습비율이 가장 높다. 학생들은 학교가 2011년 운영을 시작한 ‘현장실습지원센터’를 통해 실습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전자공학부생들은 기업 20여 곳에서 현장 실습을 했다.
이 학부에 다니는 조철희(25)씨는 "9주 동안 기업에서 일하면서 '스마트홈(집안의 모든 장치를 연결해 제어하는 기술)' 프로그램 개발이 적성에 맞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며 "현장실습 덕분에 진로 분야를 정했다"고 말했다.
한양대(ERICA) 못지 않은 현장실습 참여 비율을 보인 한국산업기술대 전자공학부는 8주(320시간) 현장실습이 의무다. 학생들은 여러 기업들이 입주한 교내의 엔지니어링하우스(EH)에서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현장 밀착형 학습을 받을 수 있다.
여름방학(8주) 동안 엔지니어링하우스에서 실습한 김동준(24)씨는 “블랙박스 같은 영상처리 기기를 개발하는 업체에서 최신 기술을 배웠다”며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 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동국대(서울) 전자전기공학부는 취업률(84.8%)이 다섯째로 높다. 학생들은 2학년때부터 반도체·전력 등 6개 트랙(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취직하고자 하는 분야를 더욱 심층적으로 배울 수 있다. 김삼동 동국대 전자전기공학부장은 “학생들은 트랙별로 정해진 교수에게 언제든 취업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며 “교수들도 학생 취업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평가에서 최상에 오른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는 교수 한 명당 학생 수가 7명으로 평가 학과 중 둘째로 적었다. 이는 학생 주도형 수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학과에서 중점을 두는 수업은 3·4학년이 참여하는 ‘설계과제’다. 학생이 수업 주체가 돼 두 학기 동안 자신이 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시연회까지 연다. 김상우 학과장은 “학생 세 명으로 한 조가 이뤄지는데 저마다 지도교수가 있어 함께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평가팀=남윤서(팀장)·조한대·백민경 기자, 김정아·남지혜·이유진 연구원 nam.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