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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의 비선실세' 이임순 징역형, 없었던 일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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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이임순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가 답변하고 있다. 앞은 전 대통령 주치의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이임순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가 답변하고 있다. 앞은 전 대통령 주치의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지난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최순실 주치의' 이임순(64) 순천향대 교수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교수를 재판에 넘긴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1심 징역형 깨고 2심서 공소기각 판결 #지난달 정기양 유죄 선고와 정면 배치 #김기춘ㆍ우병우 재판서도 같은 문제 #특검팀 "대법원 판단 받을 것"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31일 "고발의 적법성이 인정되지 않아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된다"면서 이 교수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선고를 파기했다. 공소가 기각되면 재판 자체가 열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이같은 처벌은 모두 무효가 된다.

이 교수는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청문회에 나와 “김영재 ·박채윤 부부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소개해 줬느냐”는 장제원 의원의 질문에 세 차례에 걸쳐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특검팀은 지난 2월 28일 이 교수를 ‘국회 증언ㆍ감정법’ 상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11월 17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60일간 활동했던 국회 국조특위가 활동기간 종료 이후인 지난 2월27일 이 교수를 특검팀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위 활동이 끝난 뒤에는 종전의 위원들이 고발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종전 위원들이 이 교수를 고발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위 활동 종료된 후 이뤄진 고발은 적법하지 않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같은 법원이 국회가 같은 날 같은 혐의로 고발한 정기양 세브란스병원 교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이상주)는 정 교수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두 재판부의 판단은 왜 달라졌을까. 문제는 기소의 근거가 된 '국회 증언·감정법'고발기간을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데서 출발했다. 특위 종료 이틀 뒤에 고발장이 특검팀에 접수됐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1심 진행과정에서도 이 부분은 논란이 됐다. 김 전 실장 측은 "특위 종료 뒤 고발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 증언·감정법에는 고발기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따로 없고, 위증죄는 진술의 허위 여부를 확인하여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어 고발이 위원회 활동기간 종료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 위증 혐의에 관한 조사 자체가 제한된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문제는 지난 4월11일에야 국회의 고발장이 접수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재판에서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특검팀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즉시 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어떤 발언이 위증인지 아닌지는 조사를 해 봐야 아는 일인데, 짧은 기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특별위원회에서의 위증은 활동기간 종료 후에 고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박채윤(48)씨의 항소를 기각해 1심과 같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두 아들이 힘든 시기 보내고 있어 안타깝고 재판장 또한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으로서 그 심경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중차대한 대통령 보좌진의 직무수행 공정성을 저해해 위법성과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와 안종범 전 수석의 불공정한 지원에 힘입어 보통 사람들은 누리기 힘든 여러가지 기회와 혜택, 이른바 '특혜'를 입었다는 점에서 통상의 뇌물공여 범행과 같이 볼 수 없다"고도 했다.

문제가 된 법률 조항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제15조(고발) ①본회의 또는 위원회는 증인·감정인등이 제12조·제13조 또는 제14조제1항 본문의 죄를 범하였다고 인정한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 다만, 청문회의 경우에는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연서에 의하여 그 위원의 이름으로 고발할 수 있다.

국회법 

제44조(특별위원회) ①국회는 수개의 상임위원회소관과 관련되거나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하여 본회의의 의결로 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다.
③특별위원회는 활동기한의 종료시까지 존속한다. 다만, 활동기한의 종료시까지 제86조의 규정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에 체계·자구심사를 의뢰하였거나 제66조의 규정에 따라 심사보고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해당 안건이 본회의에서 의결될 때까지 존속하는 것으로 본다.  <개정 2005.7.28.>

공소기각 판결로 처벌 면한 '또 하나의 비선 실세' 이임순은 누구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였다면 이임순 교수는 '최순실씨의 비선실세'로 통한다.

‘최순실 주치의’로 알려진 이 교수는 지난해 5월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아들 돌잔치에 초대된 외부인 3명에 속할 정도로 최씨 일가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특검팀이 재판과정에서 공개한 최순실씨 가사도우미ㆍ운전기사 등의 진술에는 이 교수가 정씨의 아들도 진료하며 예방접종 계획도 직접 관리했다는 내용이 있다.

서 원장은 “갑자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 주치의 면접을 본다’고 해 박 전 대통령과 처음으로 만났는데 ‘’말씀 많이 들었다‘고 해 의아했다”면서 “이 교수에게 ’선생님께서 저를 추천하셨군요‘라고 물었는데 ’잘 모시세요‘라고만 해 ’실제 주치의는 이임순인가보다‘ 생각했다”고 특검팀 조사에서 진술했다. 이 교수가 “대통령이 성형 실에 관심이 많은데 소개를 해 주겠다”며 서 원장에게 김영재 원장 부부를 소개해준 것도 이같은 특수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교수는 1심 첫 공판에서부터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특검팀은 “더 이상 진실을 덮을 수 없다고 보이자 마지못해 혐의를 인정했다”면서도 “뒤늦게나마 잘못을 뉘우친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구형했고 1심은 이에 따랐다. 이 교수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도 “당시 의원들이 무섭게 추궁해서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그냥 아니다고 답했다”면서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청문회 전날 병원에서 밤을 새고 떨리는 자리에서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저도 할머니 나이에 무척 힘이 든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노화에 따른 기억력 감퇴를 고려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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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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