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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이 눈물 흘린 ‘별 헤는 집’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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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준공한 서울 성북동 ‘가달가옥(嘉達家屋)’에서 만난 이소진씨. 한옥과 양옥의 어우러짐을 실험한 이씨 설계로 태어난 집은 변모하는 전통 주택가에 여유와 흥을 지닌 새 풍모를 더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준공한 서울 성북동 ‘가달가옥(嘉達家屋)’에서 만난 이소진씨. 한옥과 양옥의 어우러짐을 실험한 이씨 설계로 태어난 집은 변모하는 전통 주택가에 여유와 흥을 지닌 새 풍모를 더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에서 건축가는 대체로 이름 없이 일하는 게 관례가 됐다. 집이 완공돼도 누가 설계했는지 밝히는 경우가 드물어 섭섭한 때가 많다. 이소진(50·‘아뜰리에 리옹 서울’ 대표)씨는 운이 좋았는지 대중에게 이름 석 자를 꽤 알렸다. 서울 창의문로 ‘윤동주 문학관’ 덕이다. 수도 가압장을 별 헤는 시인의 집으로 탈바꿈시킨 그는 밀려드는 방문객의 강력추천을 받으며 ‘젊은 건축가상’ ‘서울건축대상’의 대상을 잇달아 받았다. 상복은 끝나지 않아서 이 대표는 최근 ‘2017 석주 미술상’ 작가로 선정됐다. 여성 조각가 석주(石洲) 윤영자(1924~2016)의 유지를 이은 석주문화재단(이사장 윤재원)은 중견 여성 미술인에게 시상하던 전례를 깨고 25년 만에 처음 건축가를 수상자로 뽑았다.

‘석주 미술상’ 받은 건축가 이소진 #수도 가압장을 시인의 집으로 바꿔 #젊은 건축가상, 서울 건축대상 수상 #“모두 공유하는 게 공공건축 매력 #공들여 지어 나눌수 있는 집 지을 것”

“예술 하는 분들이 건축가에게 상을 주셨다는데 뜻을 두고 싶어요. 저는 늘 학생들에게 건축과 예술은 다르다고 강조하는데 예술이 작가 개인 중심 작업이라면 건축은 혼자 할 수 없는 여러 사람의 협업이기 때문이죠. 설계 도면은 스케치나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서 미농지(트레싱지)를 덧 대고 덧 대고 또 대서 완성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만나는 이들도 여럿이니 접촉점이나 변수가 많아요. 집을 짓고 나서 실용적이냐 하는 책임이 따르는가 하면 사용자의 만족도도 살펴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윤동주 문학관은 그에게 영감과 힘을 몰아준 샘이었다. 작은 공공건물이지만 찾는 이들이 공감과 애정으로 아껴주고 있어 공간의 가치가 나날이 풍성해지고 있다. 이 대표는 “윤동주 시인이 정말 좋은 분이었던 모양”이라며 “설계하며 그의 삶을 돌아보니 저절로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라”고 했다.

이소진씨가 설계한 윤동주 문학관. [사진·김재경]

이소진씨가 설계한 윤동주 문학관. [사진·김재경]

“영화 ‘동주’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 여기 와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기를 듣고 선한 의지는 시공을 뛰어 넘는구나 깨달았어요. 불자가 오면 여긴 법당이라 하고, 기독교 신도는 교회 같다 하고, 가톨릭 신자는 성당처럼 느낀다 하니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이 집의 주인이죠.”

이 대표는 내달 14일부터 서울 반포대로 대한민국 예술원에서 열리는 수상자 기념전에서 이런 경험을 모아 ‘건축은 왜 예술과 다른가’를 보여줄 예정이다. 윤동주 문학관을 비롯해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 ‘한강 나들목 디자인’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개선사업’ 등 대표작을 사진이나 모형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결과물의 이면을 드러내는 다양한 자료로 소개한다.

유학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끝내고 국가공인 건축사로 일할 때 스승이자 작업실 파트너였던 이브 리옹(72)은 그가 귀국한다는 말에 "대기업에 들어가지 말라”며 ‘아뜰리에 리옹’이라는 설계사무소 이름을 쓰게 해줬다. 용역비에 매달리지 말고 의미 있는 일을 하라며 후원했고, 서울에 와서 이 대표의 작업을 살펴보고는 좋아했다고 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는 이 대표는 "특정 주인이 없는 공공건축은 모두가 공유하는 우리의 것이라는 점에서 매력 있다”고 말했다. 돈 되는 일은 적지만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부대끼며 배우는 날이 그에겐 기쁨이다. 그는 "공들여 지어 여럿이 나눌 수 있는 집짓기로 수상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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